북·러 밀착할 때마다 거리 두는 중국의 속내는?

박은하 기자 2024. 6. 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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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매체 ‘미국 대외전략 실패’만 언급, 국내 영향엔 침묵
서방·주요국과 관계 개선 노력 수포될라 북·러와 ‘거리’
북핵 고도화·베트남 가스 개발 등 잠재적 갈등 요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가 결속 수준을 높일 때마다 미지근한 태도로 거리를 두는 중국의 행보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중국은 20일 전날 북·러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양자 협력 사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중국은 미국 패권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동북아 안정’도 절실해 북·러 결속에 대한 속내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20일 북한과 러시아가 전날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은 것을 두고 ‘미국의 대외 전략 실패’에 주목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관영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익명의 자국 분석가를 인용해 “러시아는 고립돼 있지 않으며 따라서 분쟁(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세계에 알렸으며, 북한 역시 미국의 대북제재와 고립전략은 실패할 것이므로 어떠한 군사적 위협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내보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러시아 전문가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북·러관계 강화가 양국에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18일 첫 차관급 한·중 외교안보 대화 결과 보도자료에서 중국 측이 “북·러 간 교류가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보다 16시간 늦게 발표된 중국 외교부 보도자료에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이지만 해당 언급이 중국 정부의 속내와 가깝다고 평가된다.

중국 경제는 불안 요소가 있지만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부동산 침체는 계속되지만 수출·제조업 투자는 올해 들어 계속 호조세를 보였으며 소비도 지난 4월부터 회복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증시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노무라 증권도 올 3분기가 중국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출의 분수령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최근 주요국들과 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은 지난 17일 호주에 ‘판다 외교’로 손을 내밀고 일방적 비자 면제 대상에도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중국산 자동차에 고율관세를 매기겠다는 유럽연합(EU)에도 협상 여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다. 중국이 지나치게 북·러와 밀착한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동북아 정세가 불안해지면 이러한 노력은 수포가 될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베이징의 한 북·중 관계 전문가는 “중국은 한국전쟁 때와 다르다. 수많은 ‘자유국가’들과 얽혀 있고 세계 경제의 틀 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며 “오히려 한·중 외교·안보 대화와 유엔사의 대북 확성기 방송 경고가 비슷한 시점에서 이뤄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이 합의 하에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러와 멀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의 핵심이었던 군사적 협력 약속이 동북아의 안정에 새롭게 큰 위험을 주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미 진행하고 있는 러시아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보면 중국으로서는 특별히 견제할 이유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미국이 대중국 견제에 쏟아부을 힘을 분산하는 효과도 있다.

이철 중국 전문 컨설턴트는 “러시아와 북한 모두 제조업 수준이 낙후돼 있고 시베리아 지역 물류망도 미비해 북·러 간 물자거래는 중국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렵다”며 “중국으로서는 북한 정권이 안정적으로 존속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동북아 질서를 뒤흔들지 않는 수준에서 북·중·러 협력은 계속 진행되며 중국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북·중·러의 미묘하게 어긋나는 이해관계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대립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이들 3국 간 협력에는 갈등 요소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핵 고도화에 경계를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아키타 히로유키 논설위원은 “러시아 지원으로 북한의 군사력이 보강되면 중국의 말을 듣지 않고 독자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며 “중국을 제쳐두고 미국과 거래하려 한다든가, 거꾸로 군사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푸틴 대통령의 방중으로 러시아의 숙원 사업인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사업이 성사될지 관심을 모았으나 큰 진전은 없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가격 흥정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도했으며, 도이체벨레는 이미 러시아산 원유를 3분의 1 가격으로 사들이는 중국에 추가 수입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이 서방과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푸틴 대통령이 20일 방문하는 베트남을 두고서도 중·러 간 잠재적 갈등 요소가 있다. 러시아는 중국이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해역에서 베트남 정부와 함께 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하고 있으며 특히 국방은 러시아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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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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