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밖 파리서 우크라 무인기 조종, 러시아軍 시설 정찰”[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유럽 최대 방산전시회 ‘유로사토리 2023’ 현장 르포
우크라 방산기업 스카이톤, 무인기 레이버드 촬영 화면 실시간 전송
방산강국 이스라엘, 문전박대 ‘굴욕’…라파 난민촌 폭격으로 개막 2주 전 참가 불허

19일(현지시간) 파리 노르 빌팽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로사토리 2024에서 취재진이 우크라이나 방산기업 스카이톤의 무인기 레이버드를 실시간으로 조종하고 있다. 취재진은 조종 레버를 통해 파리에서 2000㎞ 이상 떨어진 키이우 인근 상공에 있는 레이버드를 움직이거나 촬영 대상을 확대했다.파리=국방부 공동취재단

"화면에 보이는 마을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인근입니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르 빌팽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럽 최대 방산전시회 ‘유로사토리 2024에서 우크라이나 방산기업 스카이톤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미콜라 니콜라예프는 취재진에게 이같이 말했다. 전시가 열리는 파리에서 2000㎞ 이상 떨어진 키이우 인근 상공에 떠 있는 스카이톤의 무인기 레이버드가 찍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종 레버를 조작해 무인기를 움직이거나 촬영 대상을 확대했다.

19일(현지시간) 파리 노르 빌팽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로사토리 2024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방산기업 스카이톤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실제 사용 중인 무인기 레이버드가 전시돼 있다. 파리= 국방부 공동취재단

실제로 국방부 취재진이 작동해 보니 1m 크기의 물체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마을 속 집들의 모습과 주차된 자동차의 종류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레이버드는 4K 화질로 촬영할 수 있으며 HD 화질로 실시간 전송할 수 있다. 비행거리는 2500㎞ 이상이며 최고속도는 시간당 110㎞ 정도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본토를 정찰할 수 있다. 탑재체도 5종류가 있으며 야간이나 흐린 날씨에도 지상을 관찰할 수 있는 합성개구레이더(SAR)나 지상 표적을 직접 타격하는 자폭드론도 탑재할 수 있다.

레이버드는 지상의 안테나 기지 등을 통해 먼 거리에서도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으며 인공위성과도 연결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에서도 이 무인기가 러시아군의 중요 시설을 공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게 니콜라예프의 설명이다. 그는 "실제 전장에서 레이버드를 통해 러시아군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인 전자전 장비나 주요 시설 등의 위치 등을 파악해 포병에게 좌표를 보내 이를 타격하게 하기도 했다"며 "적의 핵심 시설이나 고가의 무기 등을 공격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핵심 무기"라고 말했다.

◆‘미래 전장’이 눈앞에…드론, AI 접목 체계 대세

이처럼 2024 유로사토리에서는 사람 대신 드론과 로봇이 싸우는 미래 전장이 실제 기술로 구현됐다. 드론과 무인기,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군사 정보 기술 활용은 이곳 유로사토리 현장에서 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랑스 다국적 방산업체인 ‘탈레스’(Thales)가 선보인 다양한 무기 체계 가운데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받은 것 역시 드론이었다. 탈레스는 드론에 사용하는 시스템이 색달랐다. 탈레스가 드론에 사용하는 AI 시스템은 알고리즘 데이터를 최대한 작은 공간에 많이 입력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통신장비보다 적은 전력이 사용돼 효율적이다. 파트리샤 베송 AI 조사개발 연구소장은 취재진에게 "드론이 사람 없이도 스스로 구동될 수 있게 만들었다"며 "드론이 어디서 어떻게 행동할지 사전에 검토해 데이터를 입력하면 알아서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탈레스가 구현한 기술대로라면 하나의 AI 시스템으로 19대의 로봇, 드론을 조종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해 하나의 AI 시스템으로 여러 대의 드론을 날려 대응할 수 있다고 탈레스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일반 병사도 쉽게 드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론 구동을 위한 복잡한 기술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로헝 르티리에 전략마케팅팀장은 "하나의 화면만 보고도 드론 여러 개를 통제해 데이터를 모아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면서 "드론을 보내면 자동으로 적의 차량, 이동 경로,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등을 판단해서 정보를 보내면 모든 병사가 공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야외에 마련된 탈레스 전시장 내부는 실제 전쟁터처럼 꾸며져 있었다. 탈레스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전쟁의 관문’이 됐기 때문에 이를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최대 방산업체답게 탈레스 전시장 입구는 각국 방산업계 관계자와 관람객들로 붐볐다. 한국의 방산업체 관계자들도 탈레스 전시장을 찾았다. 여러 사람이 붐비는 만큼 보안도 철저했다. 언론이나 외교 관계자가 아니면 긴 시간을 기다려 입장해야 했다. 입구에서 등록 절차를 마치면 탈레스 관계자가 가이드처럼 동행해 전시장 내부를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국적의 군사용 로봇 기업 ‘밀렘 로보틱스’(milrem robotics)는 무인 지상차량(UGV) 테미스(THeMIS)를 전시장 내부로 가져왔다. 1톤이 넘는 무게의 보급품을 완전 자율주행으로 운송하는 기본형 테미스와 대전차 미사일, 다연발 유탄 발사기 등을 장착한 전투용 테미스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AI를 활용한 군사 정보 기술 활용도 유로사토리를 관통하는 주요 주제였다. 주최 측인 프랑스 국방부는 AI를 실제 작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컨퍼런스를 열어 해군의 음향 탐지 시 잡음을 제거하는 기술, 사람의 눈으로는 식별이 어려운 잠복 장애물을 탐지하는 기술 등을 소개했다.

19일(현지시간) 파리 노르 빌팽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로사토리 2024에 프랑스의 다국적 방산업체 탈레스의 전시관 앞에 레이더 장비가 진열돼 있다. 탈레스의 레이더 GM200은 지상에서 적군의 비행기나 드론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되 연관이 없는 정보는 자동으로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췄다. 파리=국방부 공동취재단

◆‘두 개의 전쟁’ 여파…이스라엘 퇴출·러시아는 불참

전 세계에서 두 개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방산 전시회인 만큼 2024 유로사토리는 이전에 열린 전시회와 달리 세계적인 갈등 상황이 반영됐다.

참가 신청을 마쳤던 74개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은 유로사토리 개막을 2주가량 앞두고 참가가 금지됐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남부 라파 난민촌 폭격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가 이들의 참가 신청을 취소한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 내 반전단체 등은 "전쟁 범죄에 가담할 수 있는 이스라엘 방산기업들에 경제적 이익을 줄 수 있는 박람회 참가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당초 이스라엘 업체들에게 배정됐던 장소는 파란색 가벽으로 막혀 있었다. 이스라엘 업체들의 부스가 마련될 예정이었던 공간엔 대신 참가자들이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였다.

프랑스가 유럽 최대 방산전시회 유로사토리 2024에 이스라엘 업체들의 참가를 금지한 가운데 19일(현지시간) 전시가 열리는 파리 노르 빌팽트 컨벤션 센터 내 이스라엘관은 텅 빈 상태로 남아있다. 파리=국방부 공동취재단

이에 대해 프랑스-이스라엘 상공회의소가 행사 주최 측을 상대로 낸 참가금지 효력중지 가처분 소송을 파리 상사법원이 현지시간 18일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방산 업체들이 유로사토리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은 열리게 됐다. 하지만 박람회가 이미 중후반에 다다른 만큼 실제 참가 여부는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 정부와 방산업체들도 참가 리스트에서 이름이 빠졌다. 러시아 방산업체들은 코로나19로 열리지 않은 2020년을 제외하고 이전까지 열린 유로사토리에 참가했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2022년과 올해엔 나오지 않고 있다. 2년이 넘게 전쟁을 끌어오고 있는 만큼 유럽 최대 규모 방산 전시회에 진열할만한 무기 체계나 장비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업체들이 유로사토리에 나와 드론과 무인항법장치 등 자국 방산 기술을 홍보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뤘다.

파리= 국방부공동취재단, 정충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