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새 조약에서 ‘통일’ 언급이 사라진 이유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 그대로 반영
윤 정부 들어 관계 악화로 삭제된 듯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 19일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는 기존 북·러 조약들에 담겼던 ‘조선 통일’과 관련한 조항이 사라졌다.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선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들어 심화된 남북관계 악화가 통일 조항 삭제로 이어진 것이다.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조약 전문에는 ‘통일’이나 ‘대한민국’, ‘한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북한이 소련 시기를 포함해 러시아와 맺은 1961년·2000년·2001년 조약에 통일에 대한 언급을 명시했던 것과 달라진 부분이다.
이번 조약은 북·러가 2000년 체결한 ‘조·러(북·러) 친선·선린 협조에 관한 조약’을 대체한다. 이 조약 3조는 “조선과 러시아는 북남공동선언에 따라 조선반도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환영”하면서 “관련국들이 이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맺은 ‘6·15 남북공동선언’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침공시 상호 군사지원을 명시한 1961년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에도 “조선의 통일이 평화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기초 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명시됐다.
이번 조약에서 통일 관련 내용이 사라진 것은 김 위원장이 ‘북한 단일 국가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 족속들과는 민족 중흥의 길, 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며 “북남관계는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재규정했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이 주장한 ‘1국가 2체제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포기한 이유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을 차단하고, 북한 체제 보존에 우선순위를 두려는 것이라고 분석됐다. 남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단일 국가로서 외교 관계에 힘쓰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조약에서 통일이 사라진 대신 북·러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6·25 전쟁과 당시 소련의 북한 지원을 수차례 언급했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한반도에서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휴전선을 경계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통일 조항 삭제에 대해 “한국과 관계를 변화시키면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가 아니라, ‘북한 자체를 하나의 국가로 보고 외교하자’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과 협력을 원하는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싫어하는 남북통일 조항을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남북 관계 단절의 결과가 통일 조항 삭제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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