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선선하이 견딜 만하다”…32도 대구의 노숙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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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우째 그래 더븐지, 숨을 몬 쉬겠드라. 오늘은 선선하이 견딜 만하다."
그가 '선선하이 견딜 만하다'고 한 20일 대구 낮 기온은 섭씨 32도였다.
이날 대구 중구의 무료급식소 '요셉의집' 앞 골목에는 김씨처럼 이른 더위를 소재로 대화하는 노숙인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노숙인들이 여름철 폭염을 피할 수 있게 대구시가 임시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남씨는 안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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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우째 그래 더븐지, 숨을 몬 쉬겠드라. 오늘은 선선하이 견딜 만하다.”
콧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쓱’ 훔치며 김영희(81)씨가 말했다. 그가 ‘선선하이 견딜 만하다’고 한 20일 대구 낮 기온은 섭씨 32도였다. 이날 대구 중구의 무료급식소 ‘요셉의집’ 앞 골목에는 김씨처럼 이른 더위를 소재로 대화하는 노숙인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이기 덥다꼬?” “끈적하이 안 덥나?” “칠팔월엔 니 디지삐겄다.”
이날 대구 날씨는 두텁게 낀 구름이 뙤약볕을 막아줬지만, 30도를 넘는 기온 탓에 10분만 걸어도 등판이 흠뻑 땀에 젖었다. “어제는 진짜로 더버가 꼼짝 몬했다. 집에 있어도 덥고, 나가도 덥고, 지하철이 제일 시원타카이.” 동구의 쪽방촌에 산다는 김씨는 더위를 피해 일부러 지하철 타고 15분 거리인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이날 급식소를 찾은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은 밥꾸러미와 함께 큼지막한 종이가방 하나씩을 들고 나왔다. 가방에는 급식소가 나눠준 생수, 오이, 복숭아가 담겨 있었다. “여름에 시원한 거 하나 사물라캐도 헹페이 되나? 오늘은 밥도 주고 복숭아도 주이까 재수 참 좋다.” 중구의 쪽방촌에서 산다는 김아무개(89)씨가 종이가방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대구에선 노인들이 여름에 함부로 돌아다니다가는 더위에 큰 탈 난다. 그래도 공짜로 밥주고 과일 주니 더워도 나온다”고 했다.
급식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대구역 뒤편 공터에는 노숙인들이 얼기설기 엮어놓은 그들만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지냈다는 남종화(57)씨는 며칠째 이어진 무더운 날씨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시원하기는 지하철이 젤이다. 그래도 나는 눈치볼 일 없는 여가 편하다. 사람들 많은 거 볼라믄 밤에 와야 된다.”
노숙인들이 여름철 폭염을 피할 수 있게 대구시가 임시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남씨는 안 간다고 했다. “나는 나이도 어리고, 아픈데도 없으니 안 간다 캤다. 육칠십 묵은 노인네들부터 편한 디서 자야제. 안 그나?”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대구의 거리 노숙인을 90∼100명으로 추정한다. 권용현 센터 사무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폭염 시기에는 센터 직원들이 매일 나가 거리 노숙인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생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임시보호시설은 단기간 이용하는 시설이다 보니, 취약계층 공공주택 등 다른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은 최대한 그쪽으로 연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지난해(6월17일)보다 일주일 빠른 지난 10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지자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근무 1단계를 가동하고, 취약계층, 야외 근로자, 고령 농업인 등 폭염 3대 취약계층 관리에 나섰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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