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앞세운 '밥이나 한잔해', 이제 tvN 예능도 중장년층을 노리는 걸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신규 예능 <밥이나 한잔해>는 요동치는 예능판에서 2000년대 지상파 쇼버라이어티 전성기로 데려가는 회귀물 같다. 비꼬는 미국식 사케즘(sarcasm)이 아니다. 레트로 트렌드를 차용한 예능은 종종 있어왔고, 트로트 경연처럼 아예 중장년을 타겟화한 예능도 한 장르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예능은 마침 드라마를 시작한 배우 김희선을 전면에 내세우는 마케팅부터 MC진의 구도와 구성, 토크의 소재와 연예인 인맥이라는 볼거리까지 그 시절 예능의 무드와 작법을 고스란히 복원해 2024년으로 가져왔다.
<밥이나 한잔해>는 배우 김희선을 중심으로 코미디언 이수근·이은지, 아이돌 그룹 더 보이즈 영훈 등 네 MC가 서울의 핫한 동네를 방문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연예인을 게스트로 모시고 동네 맛집에서 '토크'를 나누는 콘셉트다. 배우 김희선의 커리어와 인간적 매력을 기획 포인트로 잡고, 베테랑 예능선수인 이수근과 이은지가 웃음과 보조진행을 맡아 좌우로 보좌하고, 아이돌 멤버 막내가 젊음을 담당하는 MC진의 구도는 무척이나 클래식하다.
메인MC롤을 맡은 김희선은 고현정의 <고쇼>나 김혜수의 <김혜수 플러스 유>처럼 호스트이자 주인공이다. 고현정이나 최화정도 그렇듯 인간적인 매력은 일반적으로 유튜브에서 푸는 시대이지만, 뛰어난 미모와 커리어, 재력을 가진 톱배우의 '그사세'와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털털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재미의 원천으로 삼는다. 연예인부터 재벌 2세들로 문전성시였다는 김희선의 27년 단골집을 방문하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도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눈다. 막간의 리치함을 보여주는 것을 포함해 말할 것도 없이 리얼버라이어티가 존재하기 이전 2000년대 방식이다.
구성과 장치는 보다 명확한 레퍼러스를 따른다. MC들이 연예인 지인을 초대하면서 다양한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큰 판을 이룬다. 3회에 게스트로 불려온 슈퍼주니어 이특은 그 시절 이름을 날렸던 예능 선수답게 잠시 분위기를 살핀 후 단박에 <스친소>를 소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즉석에서 섭외한다는 리얼함과 의외의 인맥이 주는 신선함을 내세우는 기획은 KBS2 <夜!야! 한밤에> '보고싶다 친구야' 코너를 시작으로 <해피투게더> 등에서 차용한 지상파 TV예능에서 반복해온 기획 중 하나다. 재미의 핵심과 사라진 이유는 모두, 리얼리티에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방식으로 입힌 '리얼리티향'이 한때는 신선했지만, 진정성이 재미의 요소가 되면서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진 탓이다.
토크의 에피소드, 진행은 2000년대 큰 사랑을 받은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나 KBS2의 대표 토크쇼 <해피투게더>의 방식 그대로다. 기획의도는 골든벨 장치를 비롯해 동네사람들과 어우러짐을 이야기했지만 이 부분은 사족 수준으로 축소됐고, 방송과 일상의 경계가 너무나 명확하던 그 시절, TV토크쇼가 연예계 이야기, 가십을 소비하던 유일한 통로였던 그때 그 볼거리에 집중한다.
<라디오스타>의 김구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TV 토크쇼는 연예계 인맥이나 재력, 연예 활동을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것이 재미요소였다. 그래서 유명 배우들의 '예능나들이'라는 것만으로 화제를 불러 모으던 시절이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연예인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진다는 것이 소위 '친구' 기획의 묘미다. 이를테면 황찬성과 곽범, 주현영과 추 그리고 홍석천이 한자리에 모였다. 1990년대 압구정 오렌지족 이야기나, 2004년 드라마 촬영장 이야기, 노안과 같은 노화, 과거 전성기 시절의 위상에 관한 에피소드 등 추억 토크는 올드스쿨한 감성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이 예능이 흥미로운 포인트는 여기다. 극도의 진정성을 추구하다보니 토크의 기본 설정이 술방이 된 시대에(참고로, <밥이나 한잔해>가 유일하게 따르는 트렌드가 술방이다), '즉석 섭외'를 리얼리티로 삼고 2000년대 방식 TV토크쇼를 가져온 점이 새롭다. <밥이나 한잔해>는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점점 일상과 방송의 경계, 수용자와 크리에이터의 경계가 낮아지고 정서적 친밀도라는 지난 20여 년 간 예능이 줄기차게 바라봐온 방향성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토크 말미에는 막간 퀴즈쇼 같은 게임과 그에 따른 장치들도 있다.
일례로, <밥이나 한잔해>의 레퍼런스라 할 수 있는 '보고 싶다 친구야'코너가 있던 프로그램 <야!한 밤에>의 기획 모토가 '20대 후반을 겨냥한 본격적인 심야 성인오락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변화의 가속도 탓에 그야말로 근현대사 박물관이나 장난감 박물관에서나 접할 법한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그 시절의 예능을 2024년에 복원해 낸 일종의 타임리프 예능이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의도다. 오늘날 예능이 추구하는 진정성과 대척점에 있는 TV토크쇼 전성시대의 흔적과 방식을 굳이 복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도전적 전략이 어떤 모험수를 노린 것인지 궁금하다. tvN 예능도 본격적으로 중장년층을 노리는 걸까? 아니면 기사화되었던 정말 여가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밥 친구 예능'을 추구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미니멀해지는 토크쇼의 흐름, 궁극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트렌드와 정반대되는 무겁고 버라이어티한 선택을 한 것일까?
전성기 이후 의미와 가치, 재미 면에서 심각한 매너리즘이라며 오랜 기간 핀잔을 듣다가 리얼버라이어티 및 종편 예능의 급부상으로 디졸브되어 도태된 브라운관 시절 예능코드를 예능이 TV라는 플랫폼 자체를 넘어선 콘텐츠가 된 시대에 복원한 전략이 너무나 궁금하다. 왜냐면 토크쇼는 더 많은 것을 진정성 있게 담기 위해 계속해 경량화하는 추세다. 장소나 구성의 제약을 떠나 여러 의미로 일상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날 예능 소비자, 시청자는 연예계 이야기에 귀를 종긋 세우고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에 앉은 존재가 아니라, 실시간 라이브에 참여하는 유저에 가깝다. 예능 토크쇼라도 정서적으로 가깝거나 내 삶에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한다.
그런 오늘날 김희선으로 상징되는 기획되고, 구성되고, 화려함이 있는 토크쇼 <밥이나 한잔해>가 나왔다. 이 완벽에 가까운 복고 코드가 지향하는 바가 트렌드에 대한 반작용을 고려한 것인지, 채널의 타겟 연령층에 변화가 있는 것인지, 보지 못하는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지, 받아들여진다면 그 논리도 이해하고 싶다. 오랜만에 트렌드를 의식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모처럼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과 평가가 무척 궁금한 예능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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