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의 길 [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철학자 김상봉의 신간 ‘영성 없는 진보’를 읽었다. 한국 진보 진영이 이성적 언어만 쓰기 때문에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원래는 안 그랬다. 동학부터 광주까지, 전봉준부터 전태일까지. 나와 우주는 하나이고, 세상은 더 나아질 거라는 강렬한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역사를 바꾸는 정치적 실천을 한다. 나를 버리고 참나를 찾는다. 그러나 믿음은 결코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다. 영성의 영역이다. 일단 믿어야 그 믿음이 현실이 된다.
영성 있는 진보란 가능할까? 애초에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이 이성의 결과다. 하나인 우주를 둘로, 여럿으로 나누는 것이 이성이다. 진보, 나아감의 비유는 서양 근대 문명의 직선적인 역사관에 근거한다.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고 문명은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분열과 통합을 무한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리라. 산업 문명의 상징인 증기기관차를 연상시킨다. 광야를 가르는 철도를 타고 힘차게 나아가는 인류! 진보와 성장은 이성을 숭배하는 산업 문명의 슬로건이다. 영성 있는 진보가 되려면 역설적이게도 진보라는 비유를 버려야 한다.
나아감. 어디로 그렇게 계속 나아간다는 말인가?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둥글고 유한한 지구에서 우리가 더 이상 나아갈 곳은 없다. 무한 성장의 신화를 버려야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있고, 무한 진보의 신화를 버려야 지금 여기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나와 우주는 하나이고, 세상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은 끝없이 나아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아감을 멈추고 지금 여기, 나와 우리를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찍이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거부한 영성 운동이 있었다. 19세기 미국의 초월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기차도 싫고 우체국도 싫었다. 산업 문명의 분열성과 폭력성을 감지했다. 물질적 풍요가 추동하는 야만을 보았다. 소로의 답은 ‘초월’(超越)이었다. 넘고 넘다. 뛰어넘어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넘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유한한 물질세계를 넘어 무한한 정신세계로 가자는 외침은 숭고한 만큼 공허하다.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았던 소로의 가르침 ‘월든’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20세기 일본의 교토학파는 ‘포월’(包越)을 제시했다. 포함하고 초월한다. 품고 넘어서자는 뜻이다. 이것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이 세상을 넘어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실질적으로는 일본이 서양이라는 타자를 품고 넘어서자는 외침이었다. ‘근대의 초극(超克, 넘어서 이기다)’과 함께 태평양 전쟁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논리가 됐다. 포월이든 초극이든, ‘넘어섬’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서구 근대성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도, 넘어서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의 길은 무엇인가? 남한과 북한, 중국과 미국, 동양과 서양, 진보와 보수, 여성과 남성,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을 넘어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한국의 영성 전통에서 나는 길을 찾는다. 7세기 고운 최치원은 이 나라의 현묘한 도, 풍류의 길을 ‘포함삼교 접화군생’이라 요약했다.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뭇 생명을 접화(接化)한다. 접화란 사랑하여 공진화한다는 뜻이다. 하나 됨이다. 최치원의 후손인 수운 최제우가 19세기 창시한 동학은 ‘포접’(包接)제로 조직되었다. 균근망처럼 포함하고 접화하는 지하조직이 있었기에 동학혁명도 삼일운동도 가능했다.
포접을 생각한다. 품고 사랑한다. 어머니가 나를 낳은 방식이자 지구가 뭇 생명을 낳은 방식이다. 대기(大氣), 큰 기운, 즉 지구를 둘러싼 하늘님이 생명을 기르는 논리다. 지구라는 거대한 항아리 속에서 만물이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공진화하고 있다. 성장과 진보가 아닌 성숙과 발효다. 콩과 누룩이 하나 되어 된장이 되는, 말 그대로 되어감(生成), 되기(becoming), 됨됨이의 비유다. 넘어서거나 나아갈 이유가 없다. 지구라는 우리 모두의 유일한 집에서 다 같이 하나의 님이 되어갈 뿐이다.
한국의 힘은 포접에 있다. 중국보다 유교적이고, 인도보다 불교적이며, 일본보다 파시스트적이고, 미국보다 기독교적인 나라다. 우리는 극과 극을 품어서 조화롭게 만드는 태극의 힘, 비빔밥의 힘이 있다.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케이(K)-영성, 어울림의 길이 바로 포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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