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이제훈 "숨이 멎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달렸죠"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는 꿈을 찾아 목숨 걸고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질주하는 북한 군인의 이야기다.
보위부 간부가 그를 뒤쫓으면서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제가 달릴 땐 그 모습을 담으려고 바로 앞에서 카메라가 있는 자동차가 달렸죠. 저는 도저히 차를 따라잡을 수 없는데, 어떻게든 따라잡아 보려고 했어요. 그렇게 헐떡거리면서 '이러다간 숨이 멎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죠."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제훈(40)은 '탈주'에서 질주하는 장면을 찍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북한군 부대를 탈영해 남쪽으로 귀순하는 규남 역을 맡았다.
"해 질 무렵 산속에서 달리는 장면은 (일몰이 얼마 남지 않아) 촬영할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여러 번 왕복하면서 달렸죠. 제작진이 '그만하면 됐다'고 했는데, 저는 숨이 멎을 때까지 달려보고 싶었어요. 규남이 그토록 자유를 갈구하는 걸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했죠."
아스팔트도 아닌 산과 언덕, 들판에서 질주한 탓인지 이제훈은 촬영 과정에서 무릎을 다쳤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갈 때 무릎이 잘 접히지 않아 병원에 가기도 했다.
"제가 미련한 탓인지 (촬영할 때) '무릎이 아파 쉬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했어요.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요."
이제훈은 규남을 연기하려고 체중도 60㎏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줄였다. 그는 "지금까지 해온 어떤 작품보다도 식단에 대한 제한을 강하게 뒀다"고 털어놨다.
극 중 규남이 비무장지대 곳곳에 설치된 지뢰도 두려워하지 않고 귀순을 감행하는 건 자유를 향한 열망 때문이다.
그러나 '탈주'는 남북한 체제 대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규남은 꿈을 좇아 감옥과 같은 현실에서 과감하게 탈주하는 사람을 표상한다. 그렇게 영화는 꿈을 접고 현실에 안주한 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규남이 가려고 한 곳도 물론 유토피아는 아니죠. 그러나 그곳에서 무엇을 이룰지 몰라도 그가 꿈꾸는 걸 시도는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어요. 설사 실패하더라도 무엇인가 해볼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순수한 갈망을 어떻게 표현할지 끊임없이 고민했죠."
'탈주'에서 규남을 쫓는 보위부 간부 현상은 구교환이 연기했다. 이제훈과 구교환이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이다. 이제훈은 202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공개적으로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로 구교환을 꼽은 적이 있다.
이제훈은 구교환에 대해 "예전부터 너무 좋아하고 흠모했던 분"이라며 "'탈주'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현상 역을 누가 했으면 좋겠냐는 말이 나왔을 때 내가 강력하게 (구교환을) 밀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교환이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며 "촬영을 함께하면서 '이분의 매력의 끝은 어딜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빠져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극 중 현상은 규남과 어린 시절부터 친한 사이다. 규남이 탈영하기 전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현상은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손을 닦은 물티슈로 어설프게 마술을 선보인다.
이제훈은 현상의 행동이 시나리오에는 없던 것으로 구교환의 아이디어라며 "두 사람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 장면 하나로 상상할 수 있다. 너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제훈은 '탈주'에서 북한 젊은이가 쓰는 말투를 구사하려고 북한군 출신 20대 탈북자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가 시나리오 대사를 일일이 녹음해준 것으로 연습하면서 최대한 북한 말에 가까운 느낌을 살려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항상 관객에게 사랑받도록 열심히 갈고닦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를 찾아 연기로 표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 만큼, 안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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