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들불축제 “오름 불놓기 빼고 빛과 조명으로”
존폐 논란 속 오름불놓기 빼기로
달집태우기는 존치, 시민참여 확대
환경 훼손과 산불 위험, 기후 위기 시대 역행 논란에 휩싸였던 제주들불축제의 ‘오름 불놓기’가 빛과 조명으로 대체된다.
제주시는 내년부터 오름 불놓기를 빼고 빛과 조명, 미디어월 등을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제주들불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20일 밝혔다.
이날 발표한 2025년 들불축제 기본계획안을 보면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던 오름 불 놓기를 하지 않는 대신 빛과 조명 등으로 새별오름에 불을 형상화하기로 했다. 미디어월을 활용해 참여자의 희망메시지를 송출하는 식의 참여형 미디어 콘텐츠도 개발한다. 다만 달집 태우기는 소규모 불 놓기라는 점, 축제의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없애지 않고 이어 나간다.
필수 공간을 제외한 행사장 대부분을 시민이 참여하는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축제장 일부를 캠핑 구역으로 설정하고 각종 체험과 힐링을 위한 공간으로 채운다. 제주의 돌 문화, 전통 민속놀이를 녹인 프로그램도 개발한다.
제주시는 들불축제를 친환경 축제로 육성하기 위해 다회용기 대여와 세척 시스템을 도입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로 했다. 제주시는 향후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한다.
제주 옛 풍습 축제로 1997년부터 개최
올해 축제 무산·내년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제주들불축제는 봄이 오기 전 해충을 없애기 위해 목장이나 들판에 불을 놓았던 풍습인 ‘방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축제로, 1997년부터 시작됐다. 서부지역에 있는 새별오름에 불을 질러 통째로 태우는 오름 불 놓기와 횃불 행진, 달집태우기 등과 같은 불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거대한 오름이 통째로 활활 타오르며 어두운 밤을 밝히는 오름 불놓기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으로 축제의 백미였다.
축제 초기에는 정월대보름 전후 열렸으나 강풍, 폭설 등 날씨로 인한 파행이 이어지자 2013년부터 경칩이 속하는 주말인 3월로 변경해 치렀다.
하지만 들불축제의 오름 불놓기는 매우 건조한 시기인 3월에 열려 산불 위험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왔다. 실제 전국적으로 산불 피해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제주에서는 지자체가 일부러 불을 놓아 유희로 즐긴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3년에는 전국적인 산불 발생, 정부의 산불 경계 발령 등으로 불과 관련한 행사를 모두 뺀 채 축제를 치러야 했다.
환경단체는 무엇보다 오름에 인위적으로 기름을 뿌려 불을 냄으로써 발생하는 환경훼손과 오염, 전 세계 곳곳이 이상기후로 불 타는 상황에서 일부러 불을 질러 대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점 등을 비판해왔다.
결국 들불축제 존폐 여부가 논란이 됐고, 환경단체의 청구로 숙의형 정책개발 의제로 채택됐다. 숙의 결과 오름 불 놓기 대신 생태적 가치에 중심을 둔 콘텐츠를 개발해 들불축제를 이어가자는 권고안이 나왔다. 제주시는 권고안을 받아들여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기로 하고 올해 축제는 취소했다. 이후 시민기획단 회의, 전국 콘텐츠 공모 등의 과정을 거쳐 들불축제 기본계획안이 수립됐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제주의 정체성과 생태 가치를 지키고 시민참여 축제로 육성하기 위해 축제 기본계획에 시민기획단의 논의 결과를 적극 반영했다”면서 “2025년 제주들불축제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첫해인 만큼 많은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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