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냉-물냉 고민 마시라… ‘비물냉면’이 다 잡았으니[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김도언 소설가 2024. 6. 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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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냉면의 계절이다.

냉면은 제법 신기한 음식이다.

그런데, 이 집은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따로 나누지 않는다.

동반자와 나는 비빔냉면을 정확히 반 정도 먹고 육수가 담긴 주전자를 양껏 기울여 물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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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 함남면옥의 냉면. 비빔장을 섞어 절반쯤 먹은 후 육수를 부어 물냉면으로 마무리한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바야흐로 냉면의 계절이다. 냉면은 제법 신기한 음식이다. 전 국민이 즐겨 먹는 단품 메뉴가 됐으면서도 특유의 도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는 면에서 말이다. 흔한 것일수록 품위는 허술해지기 마련인데.
김도언 소설가
지난달 전남 여수 여행을 다녀왔다. 여수 같은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에 가면 다들 신선한 해산물을 먹기 마련이다. 산지에서 직접 잡은 활어회도 먹고 갈치조림도 먹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건 외부자의 관점에 지배당한 결과처럼도 보인다. 여수에 사는 원주민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평소 해산물을 많이 먹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겠으나 그곳 사람들 역시 냉면도 먹고 짜장면도 먹고 삼겹살도 구울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여수 사람들이 평소 즐겨 먹는 보편적인 식단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이순신광장에 있다는, 이미 여수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냉면집 함남면옥을 발견했다. 냉면을 좋아하는 동반자와 함께 설렘을 안고 찾아가니 ‘Since 1955’라고 쓰인 간판부터 범상찮은 아우라를 풍긴다. 그렇다면 꼬박 7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셈.

그런데, 이 집은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따로 나누지 않는다. 메뉴판 맨 위칸에 적힌 냉면을 달라고 하니 비빔장과 고명이 올려진 냉면 사발과 함께 ‘스뎅(스테인리스)’ 주전자에 한가득 냉육수가 담겨 나오는 게 아닌가. 일하시는 분 말씀이 먼저 비빔장과 면을 잘 섞어서 드신 후에 취향에 따라 육수를 부어서 먹는 게 이 집의 ‘식법’이라는 것이다. 무릎을 절로 칠 정도로 신박한 아이디어 아닌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숙명적이면서도 고질적인 결정 장애에 직면한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을 것이냐 찍어 먹을 것이냐, 물냉이냐 비냉이냐. 그런데 함남면옥의 이 전통은 그 소소하지만 고통스러운 장애를 한 번에 해결해주는 것이다. 비빔냉면과 물냉면을 따로 팔지 않고 함께 맛볼 수 있게 배려한 이 집의 전통이란 게 기실 이윤을 먼저 생각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 아마도 주인은 자신도 어딘가에서 냉면을 사 먹어 보았던 식객 입장을 가만 떠올려 본 것이리라.

고구마 전분으로 반죽을 해서 뽑았다는 면은 적당히 찰지면서 졸깃한 식감을 냈고 비빔장은 완연히 천연재료의 맛을 내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감칠맛을 더해 줬다. 동반자와 나는 비빔냉면을 정확히 반 정도 먹고 육수가 담긴 주전자를 양껏 기울여 물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 역시 화학조미료 맛을 지워낸, 깊으면서도 그윽한 향미를 안겨주었다. 거기에 일하시는 분의 친절함과 민첩함, 서울 유명 냉면집 가격에 한참 못 미치는 합리적 가격까지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이 집을 검색해서 권한 동반자도 내심 흐뭇해했다.

상술한 것처럼 나는 여수 사람들이 사랑하는 함남면옥에 와서 노포의 법칙 하나를 배웠다. 그것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 역시 언제든지 음식을 사 먹는 식객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노포 주인들은 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객의 마음으로 식객에게 필요한 것을, 식객이 말하기도 전에 준비해 알아서 식객의 상 앞에 차려주는 것이다. 이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당신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제가 다 압니다’의 마음이랄까.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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