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쇼크] 비만·당뇨 시장 노리는 K제약·바이오, 美 학회 출동
한미·동아에스티·대웅·프로젠 등 R&D 성과 공개
당뇨·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인 국내 기업들이 21~24일 미국 올랜도에서 열리는 미국당뇨학회(ADA)에 대거 참가한다. ADA는 전 세계 전문가 약 1만2000명이 모여 대사질환 관련 연구 결과와 치료 지침을 공유하는 자리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개발 중인 비만·당뇨 신약 파이프라인(후보군)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어 시장의 관심도 크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동아에스티, 대웅제약, 프로젠, 현대약품, 펩트론, 인벤티지랩 등이 ADA에 참가해 각 사의 주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글로벌 제약사인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의 독주 체제다. 배고픔을 줄여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원리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 신약이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국내 제약사들도 앞다퉈 차세대 당뇨·비만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국내사들은 자사 후보물질이 신약과 비슷한 효능과 함께 부작용을 줄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신약보다 나은 약효 강조
한미약품은 비만신약 후보물질 HM15275에 대한 4건의 전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HM15275는 장에서 분비되는 혈당과 식욕 조절 호르몬인 인크레틴 치료 약물이다. GLP-1과 위 억제 펩타이드(GIP), 글루카곤(Glucagon) 등 3가지 수용체에 삼중 작용하도록 설계한 게 특징이라고 회사는 밝혔다.
GIP는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이점을 높이는 한편, 메스꺼움과 구토, 설사 같은 GLP-1 작용제의 위장관 부작용을 완화하는 기능을 한다. 글루카곤은 포만감 조절과 함께 에너지 소비·지질 대사 조절에도 관여한다. 한미약품은 이 세 가지 약리작용을 적절히 활용하면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심혈관질환에 대한 치료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개된 초록에 따르면 비만 쥐 모델에서 진행한 전임상 결과에서 HM15275는 투약 3주 후에 39.9%의 체중 감량 효과를 달성했다. 이는 같은 조건에서 진행한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티드와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보다 체중 감량 효력이 우월한 수준이다. 세마글루티드의 투약 3주 후 체중 감량 효과는 15%, 티르제파타이드는 25.3%였다.
일라이 릴리가 개발 중인 삼중 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의 동물실험 결과와도 비슷한 수준이다. 투여 용량이나 부작용, 독성과 관련한 데이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HM15275가 전임상 단계에서 치료 효력에 대한 경쟁력을 입증했다”며 “특히 근육량을 유지 또는 늘리는 효과도 나타내 이번 학회에서 관련 언급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자회사 뉴로보 파마슈티컬스가 개발 중인 당뇨 비만 후보물질 DA-1726의 전임상 연구 결과를 포스터로 발표한다. 회사에 따르면 DA-1726은 GLP-1 수용체와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한다. 식욕을 억제하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말초에서 기초대사량을 증가시켜 체중 감소와 혈당 조절을 유도한다.
DA-1726은 동물실험에서 우수한 체중 감소 효과를 나타냈다. GLP-1, GIP 이중작용제인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를 투여한 비교군보다 더 많은 음식을 섭취했는데 유사한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 지난 4월 글로벌 임상 1상 시험을 위한 미국 첫 환자 투여가 개시됐다.
프로젠은 비만·당뇨 신약 후보물질 PG-102의 비임상·임상 결과를 공개한다. 이는 GLP-1과 GLP-2 수용체 이중 작용제다. GLP-2는 소장 점막 유지와 소화 흡수 촉진에 기여한다. 이를 적용해 기존 GLP-1 유사체 약물과 차별화하는 전략이다.
회사에 따르면 PG-102는 비임상 동물 모델에서 젭바운드와 비교해 동등한 수준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체중에서 지방을 뺀 근육, 골격 등의 무게인 제지방량 지표는 PG-102가 더 우월했다.
임상1a상을 통해 진행한 단회 용량 증량 투여 평가에서 안전성과 우수한 내약성을 확인했다. 김종균 프로젠 대표는 “당뇨병 적응증은 월 1회 투여, 비만의 경우 주 1회 투여를 목표하고 있다”며 “심혈관계질환 등 동반질환에 대한 예방 효과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혈당 조절이 어려운 경증 신장 기능 저하 환자에게서 ‘엔블로’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한 임상 3상 결과를 포스터로 발표한다. 엔블로는 대웅제약이 개발한 국산 36호 신약으로 경쟁약(다파글리플로진) 대비 혈당 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 개발사는 적응증 확대에 주력
비만·당뇨병 치료제 시장 선두 주자인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는 당뇨병, 비만 치료 효능 향상뿐 아니라 심부전, 수면무호흡증,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같은 심혈관·대사질환까지 치료 범위를 확장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ADA에서 노보 노디스크는 34개, 일라이 릴리는 37건의 연구 결과 데이터를 담은 구두·포스터 발표로 공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비만 신약 개발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 비만 신약보다 체중 감량 효과는 크면서 부작용인 근육 감소, 복용 중단 시 요요현상 같은 한계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또 하나는 MASH 치료 효과 입증과 적응증 확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이 2023년부터 2032까지 연평균성장률 30.2%로 고속 성장해 1000억달러(약 138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지현 미래에셋증권 혁신기업분석팀 연구원은 “더 강력한 효과를 가진 비만 치료제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치료제 영역을 넘어 위탁생산개발(CDMO), 주사기, 디지털 의료기기, 의약품 유통에까지 파급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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