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인공광원에 좀비처럼 날아드네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동양하루살이로 미래는 엉망진창이에요.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마치 모래폭풍이 부는 것처럼 하루살이가 휘몰아쳐요. 시야를 가려 전철과 버스가 멈추고 수돗물에서 하루살이의 사체가 나옵니다. 미래 사람들은 피터 팬과 팅커벨이 철없이 장난을 치다가 동양하루살이가 많아졌다고 믿고 있거든요. 이 문제를 조사해주세요. 그리고 필요할지 모르니 제 4차원 주머니에서 꺼낸 도구 ‘스몰 라이트’를 동봉합니다. – 22세기 서울에서 제보자 도라에몽
“제보자가 도라에몽이라면, 그 머리 큰 너구리 아닌가?”
도라에몽을 잘 모르는 홈스 반장에게 왓슨 요원이 설명했습니다.
“너구리가 아니라 미래에 사는 고양이형 돌봄 로봇이죠. 1970년대 ‘진구’라는 말썽꾸러기 녀석을 돌보다 미래로 돌아갔어요.”
하루살이 대발생 ‘압구정 팅커벨 사태’
조사반은 우선 피터 팬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옛날 전화번호부를 찾아보면 어떨까? 거기에 나올 수도 있으니.”
홈스 반장의 아이디어에 둘은 1980~1990년대 전화번호부 한 보따리를 가져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성이 피씨인 사람을 검색해볼게요. 피가로, 피노키오, 피만두, 피천득… 오! 피터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은 서둘러 전화번호를 눌렀습니다. 휴대전화 너머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희는 하루살이 대발생 사태를 조사하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입니다. 혹시 팅커벨을 아시나요?”
“당신네가 찾는 피터팬은 성이 피터인 거 같은데. 나는 성이 피, 이름이 터팬이요. 그나저나 내가 동양하루살이를 연구하는 박사가 맞긴 하오. 어떻게 알았소?”
피터팬 박사의 연구실은 최근 하루살이 출몰로 골치를 앓는 서울 성수동의 한 건물에 있었습니다. 홈스와 왓슨을 보자, 하루살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그가 ‘이리 오라’고 손짓했습니다.
“동양하루살이입니다. 2~3㎝ 정도 되는 크기에 예쁜 체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화 <피터 팬>에 나오는 요정 ‘팅커벨’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동양하루살이 대발생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례는 2009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압구정 팅커벨 사태’였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온 듯 하루살이가 창궐해 로데오거리의 쇼윈도를 덮었고, 처음 본 광경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죠.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에서도 매년 출현하면서 2010년대 악명을 떨쳤고, 서울시 성동구와 광진구도 단골 대발생 장소가 됐습니다.
조사반과 피터팬 박사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제과점과 편의점, 옷가게 등이 입주한 1층의 쇼윈도에는 이미 곤충 수백 마리가 빼곡히 붙어 있었어요.
“하루살이야, 하루살이야!”
피터팬 박사가 말을 걸었지만, 곤충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한 하루살이가 날개를 조금 까닥이더니, 하루살이만 한 목소리로 말하네요.
“여기가 어디죠? 아… 어지럽다.”
집단 환각에 빠진 듯 모두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홈스 반장이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하루살이는 조명 앞에 붙어 꼼짝도 안 하고 있는 거죠?”
“이 친구들이 넋이 나가 있으니 물어봐도 알 수가 없네요. 아마도 무언가 큰 자극 때문에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거예요. 혼란 그 자체의 상황인 거죠.”
초강력 인공 광원의 등장
양주성 곤충이 빛에 몰려드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길 찾기 가설입니다. 야행성 곤충은 달이나 별 같은 천체의 신호를 이용해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 진화의 역사에 없던 초강력 인공 광원이 갑자기 나타난 거죠. 하루살이는 아주 강력한 빛에 이끌려 좀비가 되어, 꿀단지에 빠진 개미처럼 쇼윈도에 붙은 채 생을 마감하는 거죠. 이 밖에 밝은색을 먹이와 연관 지어 선호한다는 가설, 짝짓기 신호로 착각한다는 가설 등이 있죠.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피터팬 박사가 말했습니다.
“유충한테 물어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이들이 강바닥 굴속에 산다는 게 문제지만.”
왓슨이 손바닥을 치며 외쳤습니다.
“도라에몽이 보내준 도구가 있잖아요!”
그 도구는 ‘스몰 라이트’였습니다. 사용설명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기능: 전원을 켠 뒤 동식물이나 사물에 비추면 부피가 작아진다.
주의 사항: 다시 커지려면 빅 라이트를 사용해야 한다.
“자, 이제 동양하루살이 유충을 만나러 잠수를 해보자고!”
벌레처럼 작아진 몸을 이끌고 셋은 차례로 한강에 입수해 강바닥에 파인 굴에 진입했습니다. 1㎝ 정도 걸어가니 막다른 길에 다다랐습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누군가 굴로 기어 들어왔습니다. 유충이었어요.
“댁들은 뉘시오?”
“하루살이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강 밖의 사람들입니다. 지상에 하루살이가 대발생하여 난리가 났거든요.”
유충이 말했습니다.
“나도 이 친구를 찾으러 왔는데. 벌써 날개를 달고 떠났나 보네요.”
“그런데 당신은 왜 날개가 안 생겼죠?”
“하하하. 이 친구는 S-1 그룹이거든요. 나는 S-2 그룹이고요. 우리는 알에서 부화한 뒤 1년 동안 굴을 파고 유충 생활을 해요. 느리게 커서 슬로(S) 그룹이라고 부르죠. S-1 그룹은 6~7월에 부화해 이듬해 5~6월에 날개를 달고 성충이 되어 지상으로 나가요. S-2 그룹은 8~9월에 부화해 이듬해 8월에 나가고요.”
“왜 두 집단으로 나뉘어 우화하는 거죠?”
“큰비를 피하기 위해서죠. 우리는 홍수기 전후로 각각 S-1과 S-2 그룹으로 나뉘어 우화해요. 그리고 넉 달 만에 유충이 되는 F 그룹도 있습니다. S-1 그룹에서 일찍 부화한 유충의 일부가 그해 S-2 그룹과 같은 시기에 하늘로 날아가죠.”
자기중심적 인간의 자기중심적 해석
이는 동양하루살이의 우화(애벌레가 날개를 달고 성충이 됨)가 홍수기를 피하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줘요. 진화의 세계에서 종의 목적은 번식이죠. 실컷 열심히 몸을 키워 지상에 나왔는데, 큰비가 내린다고 생각해봐요. 번식은 실패하고 말 테죠. 그래서 동양하루살이가 홍수기 전후로 각각 우화(S-1과 S-2)하는 거라고 과학자들은 해석합니다. 홈스 반장이 물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하루살이가 왜 이리 많아졌죠?”
유충이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제가 알 길이 있나요? 우리의 정신세계는 당신네 포유류와 달라요. 우리는 엄마가 없어요. 알에서 부화해 혼자 큽니다. 할머니 적부터 내려온 종의 역사와 사회적 기술을 엄마로부터 배우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물 밖 육지의 성충이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죠. 우리는 그저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고, 환경의 자극에 창의적으로 반응해 행동할 뿐이에요.”
유충이 말을 이었습니다.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덕소 팅커벨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의 한강 변에 사는 불멸의 하루살이죠. 강바닥 하루살이 굴과 강변의 풀숲, 도시의 쇼윈도를 돌아다니며, 하루살이의 위기를 경고하는….”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 그리고 피터팬 박사는 덕소를 향해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어요. 하루살이처럼 몸이 작아졌기 때문에 덕소까지 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죠. 서울 성수동에서 잠실대교까지 1년, 잠실대교에서 구리 한강공원까지 1년…. 그리고 1년을 더 걸으니 그제야 한강 변에 솟은 고층 아파트단지가 보였어요.
덕소 팅커벨은 한강으로 흘러드는 운길산 자락의 조용한 계곡에 살고 있었어요. 그는 매력적인 몸에 상어지느러미 같은 날개를 가진 하루살이였어요. 왜 동양하루살이가 많아졌냐고 묻자, 그는 얼굴을 찡그렸죠.
“많아졌다고요? 그건 인간의 착각입니다. 되레 줄었다고요.”
“무슨 말입니까? 지금 서울 한강에서는 대발생한 하루살이로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동양하루살이는 2급수 이상의 수질이 맑은 물에서 살죠. 사실 한강에 하루살이가 다시 나타난 건 한때 나빴던 수질이 회복됐다는 뜻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개체수가 많아진 건 절대 아닙니다. 1950년대만 해도 동양하루살이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한강 본류는 물론 여주, 가평의 남한강 그리고 북한강 상류까지 하루살이들은 해가 질 때면 강변의 풀숲에서 춤을 췄어요. 지금 인간들이 하루살이가 많다고 느끼는 건 인공 광원이 하루살이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기 때문이에요. (한숨을 쉬며) 인간처럼 자기중심적인 종은 없어요.”
피터팬 박사가 거들었습니다.
“생태적 틈새 분할(Niche Partitioning)이 깨진 겁니다. 과거 인간과 하루살이는 각각 자기만의 공간이 있었어요. 강과 마을 사이에는 둘을 완충하는 습지와 숲이 존재했고요. 하지만 강력한 인공 광원을 앞세운 인간 세력이 강으로 확장하면서, 인간과 하루살이 사이의 생태적 틈새가 사라진 거예요.”
강의 공간을 침범한 자가 범인
저 멀리 한강으로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물 위로 동양하루살이가 차례로 퐁퐁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는 우화였습니다. 덕소 팅커벨이 회상에 잠긴 듯 말했습니다.
“10여 년 전 동료들이 죽음의 쇼윈도에서 미쳐가고 있을 때, 나는 정신을 잃은 그들을 깨우러 다녔죠. 그때 진짜 팅커벨이 나타났어요. 피터 팬의 친구, 진짜 요정 말입니다. 그는 나에게 하루살이 종의 역사를 기록하라며 요정 가루를 뿌려줬어요. 그때부터 나는 죽지 않고 지금까지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어요.”
덕소 팅커벨은 우화한 하루살이들에게 ‘쇼윈도에 붙지 말라’고 알려줘야 한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홈스 반장이 말했어요.
“결국 인간이 강의 공간을 침범한 게 문제였어. 그나저나 우리도 이제 돌아가야겠군. 그런데, 서울까지 어느 세월에 가지? 3년은 걸릴 텐데.”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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