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시총 1위 등극…2000년 닷컴 버블 데자뷰?

권성희 기자 2024. 6. 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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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애플·아마존 시가총액/그래픽=김다나


엔비디아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큰 기업으로 등극한데 대해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을 생각나게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9일 엔비디아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총 1위에 오른데 대해 20여년 전 시스코 시스템즈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서 시총 1위에 올랐던 전례가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가 시총 1위를 차지한 것은 AI(인공지능) 칩 덕분이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GPU(그래픽 처리장치)는 AI 붐을 이끄는 주역으로 복잡한 AI 모델을 개발하는데 필수적인 도구다.

이처럼 AI 성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가 시총 1위에 오른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엔비디아 같은 컴퓨팅 인프라 회사가 시총 1위를 차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이전에 컴퓨팅 인프라 업체로 시총 1위에 오른 기업은 2000년 3월 네트워킹 장비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즈가 마지막이었다.

시스코는 인터넷 연결에 필수적인 네트워킹 장비를 만드는 회사로 1990년대 후반에 인터넷 혁명을 타고 급성장한 결과 2000년 3월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총 1위에 올랐다.

시스코 이후 엔비디아가 시총 1위에 오르기까지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이 아닌 다른 기업이 시총 1위에 오른 것은 2019년 2월 아마존이 잠시 1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없었다.

엔비디아를 시스코와 비교하는데 대해 2000년 당시 시스코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던 존 체임버스는 몇 가지 유사점이 있긴 하지만 AI 혁명의 역학구도는 이전의 인터넷 혁명이나 클라우드 컴퓨팅 혁신과 다르다고 밝혔다. 체임버스는 현재 벤처 투자자로 AI 사이버 보안 등에 투자하고 있다.

그는 "AI는 시장 기회의 규모 측면에서 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을 합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변화의 속도도 다르고 시장의 규모도 다르고 (엔비디아가) 가장 가치 있는 기업에 도달한 단계도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AI 혁명에 필수적인 AI 칩시장에서 지배적인 점유율을 확보한 것처럼 시스코도 인터넷에 필수적인 네트워킹 장비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며 경쟁을 잘 방어한 것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또 엔비디아와 시스코 모두 AI 칩과 네트워킹 장비에서 수익이 나지 않을 때 미리 투자해 수혜를 입은 것도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시스코 주가가 폭락했던 것은 수익을 내지 못한 닷컴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네트워킹 장비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시스코 주가는 아직도 2000년 3월에 기록한 사상최고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토대가 될 것이며 엔비디아는 데이터로 새로운 결과물을 산출해내는 AI 공장을 만드는데 핵심 공급업체라고 설명한다.

CFRA 리서치의 애널리스트인 안젤로 지노는 최근 "세계가 점점 더 AI 주도로 변화함에 따라 엔비디아는 향후 10년간에 걸쳐 우리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이 될 것"이며 엔비디아가 만든 칩은 이번 세기에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I로 끊임없이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AI 붐이 중단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벤처 캐피탈인 세퀘이아 캐피탈은 지난 3월에 AI 붐이 시작된 이후 엔비디아 칩에 약 500억달러의 자금이 투자됐지만 AI. 스타트업이 엔비디아 칩을 활용해 거둔 매출액은 30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했다.

세퀘이아의 파트너인 소냐 황은 이 같은 불균형에 대해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닐 셰어링은 지난 17일 보고서를 통해 "AI를 둘러싼 투자자들의 열광은 버블이 부풀어 오르는 모든 특징을 다 가지고 있다"며 버블이 팽창하면서 향후 18개월간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버블이 터지면 미국 증시는 "(다른 글로벌 증시 대비)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는 기간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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