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그리드, 초유의 ‘상장 무효’…더 짙어진 ‘파두 후폭풍’
이노그리드, ‘최대주주 분쟁 가능성 누락’으로 상장 취소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클라우드 서비스 개발업체 이노그리드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됐다. 1996년 코스닥 시장 개장 이래 상장을 앞둔 기업의 예비심사 승인이 취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증권업계를 뒤흔든 '파두 사태'의 후폭풍이 초유의 '상장 무효' 사태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파두 사태 이후 IPO 작업이 한층 까다로워진 데다 이번 사태까지 빚어지면서, 업계에선 사태의 파급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상장 코앞에 두고 무산…'이노그리드 사태' 일파만파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지난 18일 밤 이노그리드의 상장 심사 효력을 전격 취소했다. 상장을 코앞에 두고서도 초유의 '상장 무효'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전례 없던 일이라 시장의 충격이 상당했다.
거래소가 이노그리드의 상장 심사 효력을 전격 취소한 이유는 '심사신청서의 거짓 기재 또는 중요사항 누락'이다. 이노그리드가 최대주주의 법적 분쟁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신청서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노그리드 측은 해당 분쟁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해 기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거래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시 내용을 종합하면 이노그리드에선 2019년 12월 유상증자를 통해 김명진 대표가 대주주에 올랐다. 이전 최대주주는 에스앤알코퍼레이션인데,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박아무개씨는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고 2021년 지분매각도 동의 없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 이노그리드는 모 증권사가 에스앤알을 상대로 받아낸 주식압류명령에 제3채무자로서 간접 연루돼 있다. 당국은 이노그리드가 법적 분쟁에 휘말려 기업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봤다.
'뻥튀기 상장' 파두 사태 이후 IPO '살얼음판'
거래소가 직접 상장 심사 결과를 뒤집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통상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상장을 자진 철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국과 물밑 조율을 거쳐 '상장 취소' 처분을 받기 전에 철회하고, 문제 되는 부분을 바로잡은 뒤 재도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지난해 빚어진 '파두 사태'의 후폭풍이란 평가다.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인 파두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며 증권신고서에 2023년 예상 매출을 1203억원으로 제시했다. 이에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실제 매출은 225억원으로 집계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의도적으로 '뻥튀기 상장'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집단 소송까지 번졌다. 금융당국은 상장 주관사 압수수색까지 나서며 칼을 빼든 상태다.
이후 당국은 IPO 검증을 '핀셋' 수준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노그리드도 상장 준비 과정에서 수차례 증권신고서 보완 요구를 받았다. 매출과 수주잔고 등 실적에 영향을 주는 사항을 더 자세히 기재하라는 게 금융감독원의 요구였다. 문제가 된 이노그리드의 '최대주주 분쟁' 사항은 6차 정정 신고서에서 기재됐지만, 당국은 이런 내용을 사전 심사 단계에서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초유의 취소 처분을 내렸다.
재발방지 힘쓰는 당국…주관사 타격 불가피
파두 사태에 더해 이노그리드 상장 무효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업계는 IPO 사업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파두 IPO를 공동 주관하고 이노그리드 단독 주관을 맡는 등 사태의 중심에 선 한국투자증권에 시선이 쏠린다. 한 때 'IPO 명가'로 불리던 한국투자증권의 상장 주관 업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파두 사태 이후 IPO 과정에서 당국의 심사가 더 꼼꼼해졌다"며 "앞으로 IPO 주관 업무가 더 험난해질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올해 대형 IPO가 재개되면서 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초유의 심사 무효 사태가 벌어져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거래소는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에 돌입했다. 상장예비심사신청서의 거짓 기재나 중요사항 누락 시 상장예비심사 신청제한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금융감독원은 상장 주관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부실 실사를 한 주관사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 마련 작업을 3분기 내로 완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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