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벼락같이 덮친 돌더미.. 초대형 산사태의 수수께끼
경사진 산악지형에 서울보다 월등히 높은 인구밀도
단단한 암반이 급격히 쪼개진 이유는?
난개발과 기후위기의 복합 원인으로 추정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암반 산사태 이미 발생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지만 진실 규명 없이 미궁에 빠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최근 역대급 피해가 발생한 파푸아뉴기니 산사태도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후재난과 대형 사고들, 아득히 먼 나라의 일 같지만, 알고 보면 우리 주변의 상황과 무관치 않을 수 있습니다. 지구촌 기후재난의 최전선을 파헤치는 YTN 데이터랩이 초대형 산사태의 관련 정보를 모아 그 퍼즐을 맞춰보았습니다.
누가 얼마나 희생됐나?
일단 2천 명이란 매몰자 숫자는 파푸아뉴기니 당국의 발표 내용입니다. 반면에 유엔이 추정한 희생자는 670여 명. 산사태 발생 후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인명피해 규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엔 인공위성센터의 산사태 위치 정보 파일로 사고의 규모를 가늠해봤습니다. 사면의 평면길이가 600m에 달하고 면적은 87,531 평방 미터. 서울월드컵 경기장의 12배에 달합니다. 2천 명이라는 인원이 현장에 있었다면 서울 인구밀도의 1.47배 정도의 밀집도로 추산됩니다. 낮은 움막 형태의 주거 시설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서울보다 더더욱 인구밀도가 높았다고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실종자 인원조차 다 알기 어려운 배경에는 이 나라 특유의 행정 난맥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인구 센서스를 실시한 시점이 2000년. 그후 24년 동안이나 정확한 인구 파악이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선거명부 작성을 위한 주민 조사도 정확인 거주민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부족간 분쟁으로 주변에서 부지불식간에 유입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폭우만이 산사태를 촉발했을까?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산사태 직후 기후위기로 인한 잦은 폭우를 산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적도 부근 저위도 국가답게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고 하지만, 이번엔 얼마나 비가 많이 내렸을까요?
YTN 데이터랩이 미 항공우주국 나사의 인공위성 관측 자료로 파악해보니 해당 산사태 지점에서는 최근 2월부터 5월까지 상대적으로 '강한' 비가 자주 내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한' 이란 표현에 굳이 작은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비일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꼽을 만한 호우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단지 많은 비만이 엄청난 산사태를 촉발했는지는 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칼로 베인 듯 쪼개진 암반
다시 현장 사진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사면 위쪽에 붉은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을 보면 암반을 칼로 베어낸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산사태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전에도 작은 규모의 산사태가 일어난 흔적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케잌 조각처럼 미끄러져 부서진 암반
일반적으로 암반 산사태가 일어나는 과정을 묘사한 위 그림을 보면, 마치 케잌 조각이 잘려져 미끄러져 내리듯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그 단단한 암반이 왜 쪼개지는 걸까요?
이 교수는 무엇보다 난개발 같은 인위적인 공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사람이 지반을 건드렸어도 여러 조건이 맞물려야 암반이 무너집니다. 먼저 경사면을 깎았다면 그 방향이 무너진 면의 경사 방향과 같을 때 지반이 불안정해집니다. 여기에 암반 밑의 점토 단층까지 잘못 건드리면 붕괴 가능성이 급격히 커진다고 합니다. 암반과 암반 사이에서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하는 점토층이 외부에 드러날 정도가 되면, 빨리 대피해야 할 위험 신호라는 겁니다.
사고 현장의 토양 지도와 지질도를 분석해보니, 석회암 등으로 이뤄진 퇴적암층인대다 습곡(지층이 수평으로 퇴적된 후 횡압력을 받아 휜 상태) 지대인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퇴적암이 꺾여 생긴 층리는 특히 길게 형성되어서, 한번 무너지면 크게 무너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강우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난개발로 지형이 불안정해지고 균열이 생긴 상황에서 빗물이 스며들면 암반 틈새로 급격히 물이 차오릅니다. 옆으로 밀고, 위로 떠올리는 압력이 동시에 강하게 작용하는 겁니다. 결과는 갑작스런 붕괴. 몇 달동안 반복적으로 내린 비는, 마치 지칠대로 지친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짚 한가닥 같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땅 밑을 가득 채울 정도의 빗물이 아니더라도, 이미 금이 간 암반지형을 무너뜨리기엔 충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장마철을 중심으로 각종 산사태로 수많은 재산 피해와 인명피해가 발생해온 사실을 기억합니다. 대부분은 토석류 산사태이지만, 파푸아뉴기니 참사처럼 암반 붕괴에서 시작된 사고도 있습니다. 기록상으로 보면 1999년 부산의 황령산 산사태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던 황령산 산사태는 3차례에 걸쳐 많은 토사가 무너져 내린 사고로 주로 알려졌지만, 이 역시 암반 붕괴에서 비롯된 산사태였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비가 지반으로 침투하면서 갈라진 틈에 있던 점토에서 균열이 발생했고, 암반이 수직으로 부서졌다는 연구 기록이 있습니다. 더욱 더 큰 인명피해로 번질 수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산사태는 수십만년에 걸쳐 형성되어온 힘의 균형 상태가 급격히 무너져내리는 현상입니다. 그 자체로 자연적 현상일 수도 있지만, 확률적으로 볼 때 인위적 요소를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상당수 산사태엔 부실한 예방 대책에 대한 질타가 빠짐없이 이어졌습니다. 사고는 언제나 설마 하다가 발생합니다. 10여년 전 우면산 산사태가 그랬고 지난해 경북 예천 산사태가 그랬습니다. 과거의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날로 심해지는 기상이변은 국경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더 큰 재난을 몰고 올 것입니다. YTN 데이터랩은 앞으로도 기후위기의 실상을 꾸준히 파헤쳐나가겠습니다.
#데이터저널리즘 #기후위기
기사 및 데이터 분석 : YTN 데이터랩 함형건 기자
그래픽 제작 : 정혜련 디자이너
<데이터·영상 출처>
1. 산사태 영역 및 주택 위치
유엔 인공위성 센터 (UNOSAT)
2. 강우량 위성 데이터
NASA/GPM_L3/IMERG_V06
NASA GES DISC at NASA Goddard Space Flight Center
3.토양 함수율 위성 데이터
SPL4SMGP.007 SMAP L4 Global 3-hourly
Google and NSIDC
3. 산사태 지역 고해상도 위성 영상
MAXAR Techonologies
로이터
4. 산사태 발생 원리 도해
한국지질학회 문헌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 제공
5. 황령산 산사태 원인 분석 연구 논문
Lee, S.G. and S.R.Hencher(2009) "Repeated collapse of cut slopes despite continuous reassesment and remedial works", Engineering Geology
Volume 107, Issues 1-2, 19 July 2009, Pages 16-41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 스테판 헨처 리즈대 교수 연구 논문
학술지 Engineering Geology 발표
홍콩 산사태청(GCO: Goetechnical Engineering Office) 30주년 초청 학술대회 발표 논문
관련 YTN 방송 리포트 : <아무도 모른다...얼마나, 왜 죽었나? 파푸아뉴기니 산사태> 장아영 기자
YTN 함형건 (hkhah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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