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코로나에 몸 던진 사람들, 감염 막는 비밀 밝혔다

이영완 기자 2024. 6. 2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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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자발 접종한 챌린지 임상시험
16명 중 7명은 28일간 6~7회 접종에도 감염 안 돼
면역유전자 작동한 덕분, 다음 감염병 대비에 도움
의료진이 코로나19 인간 챌린지 임상시험 연구의 일환으로 건강한 성인에게 코를 통해 바이러스를 투여하고 있다. /ICL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퍼졌을 때 스스로 감염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코로나 백신 개발을 앞당기려고 자발적으로 바이러스를 접종한 ‘챌린지 임상시험’ 참가자들이다. 당시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판과 숭고한 희생이라는 찬사가 엇갈렸다.

코로나 백신이 예상보다 일찍 개발돼 필요가 없어졌던 챌린지 임상시험이 3년 만에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바로 어떤 사람이 코로나에 잘 걸리지 않는지 밝혀낸 것이다. 과학자들은 유사한 감염병이 퍼질 때 백신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선천적 면역력 강한 사람 특성 찾아

영국 케임브리지대 줄기세포연구소의 사라 테이크만(Sarah Teichmann) 교수 연구진은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챌린지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에 자발적으로 감염된 사람 중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특정 면역 유전자 덕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웰컴 생어 연구소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네덜란드 암연구소 연구원들로 구성됐다. 2021년 코로나에 걸리지도, 백신도 맞지 않은 건강한 성인 16명이 챌린지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연구진은 28일 동안 6~7차례 참가자의 코에 처음 유행한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를 뿌렸다. 시험 전후로는 코와 혈액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매일 코로나 검사도 두 차례 실시했다. 시험 결과 첫 번째 6명 그룹은 이틀 이상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증상도 나타났다.

반면 두 번째 그룹인 3명은 하루 두 번 실시한 검사에서 한 번 양성 반응을 보였지만, 다른 검사에서는 음성으로 나왔다. 이틀 이상 양성 반응을 보인 적도 없었다. 세 번째 그룹 7명은 계속 음성 판정을 받았다.

연구진은 참가자의 혈액과 비강 세포 시료 60만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를 즉시 제거한 사람들은 그전부터 HLA-DQA2라는 면역유전자의 활성도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는 면역 체계에 위험을 알리는 항원 제시 세포에서 나타났다. 항원 제시 세포는 바이러스를 조금 가져다가 면역세포에 보여주고 침입자니 가서 처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HLA-DQA2 유전자가 강력하면 바이러스 감염이 신체의 1차 방어선을 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잠시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하루 이내에 코 세포에서 빠른 면역 반응과 혈액 세포에서 느린 면역 반응을 보였다. 반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계속 감염된 6명은 바이러스를 접종한 코 안쪽보다 혈액에서 먼저 면역신호물질이 생성됐다. 코의 면역반응이 5일이나 느렸기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가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전에도 코로나19 환자를 연구했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전과 직후 반응을 알아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공동 교신저자인 마르코 니콜리치(Marko Nikolić) UCL 의대 교수는 “면역반응의 전체 범위를 훨씬 더 잘 이해했다”며 “인체의 면역 방어를 모방한 치료법과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노란색)가 인체 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모습을 찍은 주사전자현미경 사진./NIAID

◇코로나 백신 개발에 몸 던진 의병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많은 사람이 챌린지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2020년 4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수백 명이 챌린지 임상시험에 지원했다고 전했다. 당시 미국 의료 시민단체인 ‘하루빨리(1Day Sooner)’는 코로나 백신의 챌린지 임상시험에 자원한 사람이 15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챌린지 임상은 통상 1년 이상 걸리는 백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시작됐다. 표준적인 백신 임상시험은 수만 명에게 백신과 가짜 약을 접종한다. 이들은 자신이 어떤 약을 접종받는지 모른다. 이후 수개월 이상 관찰하면서 예방 효과를 통계적으로 입증한 결과를 모은다.

반면 챌린지 시험은 소규모 인원이 백신을 접종받고 일부러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도록 해서 면역력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다. 수일에서 수주면 결과를 알 수 있다. 백신 개발 속도를 훨씬 단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행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제약사들은 표준 임상시험으로도 1년도 안 돼 백신을 개발해 챌린지 임상시험은 의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당시 진행된 챌린지 임상시험은 이번 결과처럼 코로나바이러스와 인체 면역반응에 대해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다음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할 무기를 비축한 셈이다.

앞서 영국 ICL의 크리스토퍼 치우(Christopher Chiu) 교수 연구진은 2022년 ‘네이처 메디슨’에 챌린지 임상시험에서 코로나 감염자의 콧물 한 방울만 코에 들어가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치우 교수는 이번 네이처 논문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당시 임상시험 결과 18명이 바이러스가 있는 액체 한 방울만 코에 떨어뜨려도 코로나에 감염됐다. 액체방울은 코로나 감염자의 콧물 한 방울과 같은 농도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갖고 있었다. 감염 증상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 이틀 만에 나타나며 5일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을 정도로 바이러스가 늘어났다. 단기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증식해 코를 통해 밖으로 퍼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챌린지 임상에서 바이러스 감염은 목에서 먼저 일어났다. 바이러스가 코로 들어와 목에서 세포로 침투하는 것이다. 5일이 지나면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최고치에 도달했는데, 이때는 바이러스가 목보다 코에 더 많았다. 이는 코로나 감염 초기에 코에 면봉을 넣어 검사하는 신속항원검사가 바이러스 유무를 확인하는 데 믿을 만한 방법임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자가 자원자에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접종하고 있다.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한 챌린지 임상시험이다./AP연합

◇미국은 중단, 영국은 계속 추진

ICL의 치우 교수는 영국 정부로부터 3300만 파운드(한화 580억원)를 지원받아 챌린지 임상시험 컨소시엄을 이끌었다. 일부에서는 마땅한 코로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접종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치우 교수는 젊은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중증을 보일 위험이 낮다고 반박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에 걸린 청년 650명 중 열에 아홉은 감염 3주까지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영국과 달리 미국의 챌린지 임상은 2020년 말에 중단됐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와 챌린지 임상시험 계획을 논의했지만, 백신 개발 소식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영국 정부는 2020년 12월 2일 세계 최초로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mRNA(전령리보핵산) 방식의 코로나 백신을 승인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575-x

Nature Medicine(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2-017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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