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콤플렉스’ 버릴 때다[시평]

2024. 6. 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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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前 한국교원대 총장
최근 소득·국력 순위 日 추월
그래도 반일감정 여전히 강력
식민지배 잔혹사 뼈에 사무쳐
“일본 이기려면 일본 배워야”
克日정신으로 대등 관계 일궈
반일·반미 선동 정치 경계해야

지난 5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에 1인당 국민총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인구 5000만 이상의 국가 중 6위라고 한다. 이태 전에도 우리나라가 국력 순위 세계 6위에 올라 일본을 제쳤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당시에 일본은 우리보다 뒤진 세계 8위였고, 이번에는 세계 7위이다. 일본을 여러 방면에서 추월했으니, 이제 자신을 가지고 칙칙한 반일감정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물론 반일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그 뿌리의 하나는, 100여 년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느낀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고대에는 백제인들이 선진 문명을 전해줬고, 고려 때에는 구결을 전해줘 일본 가나(かな)의 기원이 됐고, 근세에는 주자학까지 전해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니 말이다. 다른 하나는, 국권의 침탈 행위가 너무도 패륜적이어서 가슴에 응어리진 굴욕감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전쟁 상황도 아니었는데, 궁궐로 쳐들어온 일본 낭인들이 한 나라의 국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불태웠다. 더욱이, 무저항주의의 3·1운동을 진압하려고 마을 전체를 불태우거나 주민들을 교회에 가두고 몰살하기도 했다.

우리의 국력이 피폐했던 탓이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한 수 밑으로 보던 일본인에게 너무도 잔학무도하게 당했기에 반일감정은 뼈에 사무쳤다. 그렇지만 반일감정이란 소극적이고 패배적인 것이다. 건설적인 감정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동안 반일감정에만 젖어 있었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건설적인 극일(克日)정신을 키워 왔기 때문에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조선보다 훌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조 후기에는 극일정신이 충만하지 않았기에 일본의 재침에 대비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으로 빚어진 굴욕감을 정신 승리로 해소하고는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 더는 굴욕을 당하지 말자며 썼던 류성룡의 ‘징비록’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읽히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베스트셀러가 됐다. 12번이나 일본에 다녀온 조선통신사들도 사행 길에 일본의 부유함과 강대함에 놀랐으면서도, 돌아와서는 국가의 경제와 안보를 다잡는 데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현대의 우리는 임진왜란보다 더 굴욕적인 국권 침탈을 당했지만, 한 번도 극일정신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본을 이겨내려고 대부분 와신상담했다. 강력한 일본군과 힘겹게 싸워온 독립군들도 극일정신을 철저히 내면화하고 있었다. 직접 싸워 본 사람만이 상대방을 정확히 알듯이, 광복군 출신의 독립군 인사들은 한결같이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젊은이들에게 극일정신을 심어줬다.

극일정신이 충만했던 산업화 시대의 산업 전사들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 예법을 배우고, 일본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일본 기술자를 초빙하고, 심지어 일본 제품을 베끼기까지’ 했다. 무장이 허술했던 독립군들은 최강 무력의 일본군을 배워 이길 수 없었지만, 청구권 자금과 극일정신으로 무장한 산업 전사들은 일본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혀서 끝내 극복해 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까지도 우리는 걸핏하면 반일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국가 위상으로 보나 세계 정세로 보나, 우리는 일본과 어깨를 맞잡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그들과 유쾌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반일감정을 동원하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산업 전선에서 일본과 싸워본 적도 없는 정치인일수록 시도 때도 없이 반일 선동을 한다. 국민이 깊이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반일 선동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믿어주면 안 된다. 죽창을 들고 싸우자는 반일 선동은 ‘미국 소는 미친 소’라던 반미 선동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고 퇴보적이다. 이제 우리는 늠름하게 세계 정세의 추이에 발맞춰 한·미·일 3각 동맹을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경제 결속도 다져야 한다. 머잖아 주요 7개국(G7)의 일원이 돼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주성 前 한국교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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