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후 가장 강력한 관계’…고심 커진 美中日[북러정상회담]
“美 중심 동북아 정세에 변화 가져올 수 있어” 분석도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러 밀착이 노골화하자 서방 등 국제사회는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북러 양국이 주권을 행사한 것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한 지렛대를 러시아에 넘겨줄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이번 협정에는 협정 당사국 중 한 쪽이 공격을 받을 경우 ‘상호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에서 군사적 지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지난 1961년 북한과 소련이 맺었다가 1996년 폐기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양국은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당하면 다른 한쪽은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정부는 북러의 노골적 밀착에 대해 시작 전부터 견제의 시선을 보내며 “우리는 면밀히 지켜보고 있으며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간) 푸틴의 방북 관련 브리핑에서 “우리는 어떤 나라도 푸틴의 침략전쟁을 돕는 플랫폼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도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뒤 “이란과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하는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19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패널 토론에서 “우리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점점 더 대열을 맞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이전에는 보지 못한 방식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또 중국과 이란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북한이 러시아에 “엄청난 양의 탄약”을 제공했다며 “러시아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밀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토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과 협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다음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읭에 초정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AP통신은 협정 서명을 놓고 “냉전 종식 이후 모스크바와 평양 사이의 가장 강력한 연결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북한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연결 고리고 삼아 양국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가 미국에 특별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도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이제 말이 아니라 실제로 북한 주변의 제재를 크게 파괴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할 경우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 계획을 훨씬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향후 전망을 예단해 답하는 것은 삼가고 싶다”면서도 “북러 간 군사 연계 강화를 비롯해 일본을 둘러싼 지역 안전보장 환경은 한층 더 엄격해지고 있다 생각해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대북재제 논의를 포함해 북한 관련 대응에 적극 관여하겠다”고 말했다.
기시다 정권은 떨어지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해왔다. 지난달에는 몽골에서 양측 대표단이 비밀리에 만나 일본 납북자 문제 등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접촉 사실을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북러 상호조약 체결로 북한의 러시아 밀착이 가시화되면서 북일 정상회담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르톰 루킨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 교수는 “(북러간 포괄적 전략동반자협정 체결로) 동북아시아의 전체 전략적 상황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이는 동북아에서 미국 중심의 동맹 체제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 될 것이며 한국과 일본에도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러 회담을 지켜본 중국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경계심을 보였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북러는 우호적 이웃으로 교류·협력과 관계 발전을 위한 정상적 필요가 있고, 관련 고위급 왕래는 두 주권 국가의 양자 일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린 대변인 발언으로만 보면 중국은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두 나라가 지나치게 밀착하는 것에 불편함을 드러냈다는 진단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북했던 18일 서울에선 한국과 중국의 고위급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만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한중 외교안보대화는 외교부와 국방부가 참여하는 ‘2+2’ 형태의 대화협의체로 지난달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양자회담에서 합의된 사안이다.
중국 외교부는 앞서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북러 정상회담과 시기를 맞춘 것이 아니며 한중관계 개선에 초점을 둘 것이란 입장을 밝혔지만 외교안보 분야 대화 기구라는 점에서 북러 밀착 상황을 떼놓을 수 없다.
중국 정부는 “2+2 대화 날짜는 초기 단계에서 합의된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며 애써 북러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출신으로 핵안보 전문가인 통 자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심화되는 것에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이는 북한에 대한 자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중국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쑨춘란 중국 부총리도 “러시아와 북한의 긴밀한 관계가 미국의 주의를 산만하게 해 이는 반드시 중국에 나쁜 일은 아니다”라며 “단지 중국은 중북러 3국간 협의체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자오 연구원은 “중국도 서방 핵심 국가들과 실질적 협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북한, 러시아와 사실상 동맹이라는 인식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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