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하니] ‘정당의 지구당 부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쟁하니’ 다섯번째 주제는 ‘정당의 지구당 부활’ 찬반 논쟁입니다. 지구당은 2002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차떼기 사건’ 때 불법 정치자금 통로로 인식돼 2004년 3월 폐지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구당 부활을 시사했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과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지구당 부활을 뼈대로 한 법안까지 발의했습니다. 이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찬반 의견을 전합니다.
“이래서 찬성합니다”
“정당의 조직구성권 보장해야”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21대 국회 원내정당 가운데 당비 내는 당원이 가장 많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으로 140만여명이었으며, 가장 적은 정당은 시대전환으로 274명이었다. 민주당이 시대전환의 5100배였다. 2022년 1년 동안 민주당 당원들이 낸 당비 총액은 526억원이었고 시대전환의 당비 총액은 8700만원이었다. 민주당 당비 총액은 시대전환의 600배가 넘는다. 당비 내며 활동하는 당원 수가 이토록 차이가 나는데, 두 정당의 조직 형태가 같을 수 있을까?
우리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정치결사체인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규모가 다르고 지향도 다른 정당에 필요한 조직 형태는 그 당을 만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권은 단지 어떤 조직을 만들었다고 공표할 권리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이 조직의 지향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동하는 그릇인 조직 구성권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어느 지역에 시·도당이나 선거구 단위 위원회, 혹은 그보다 작은 읍·면·동 단위 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그 당 구성원들이 필요와 능력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활동 당원이 많은 지역에서는 선거구보다 더 작은 단위의 위원회를 둘 수 있고, 없는 지역에는 시·도당도 두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활동의 자유를 가’지며 ‘자당의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입장을 홍보하는 행위,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활동은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받는다. 당원들이 자당의 정책을 홍보하려면, 홍보 이전에 먼저 정책을 정해야 한다. 140만여명의 활동 당원이 있는 정당은 274명이 있는 정당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토론과 숙의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또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홍보를 할 것인가도 정해야 한다. 당원모집을 하려면 비당원 시민들과 정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당원들이 상시적인 토론과 숙의를 진행하고, 시민들과 만날 기회를 가지려면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사무소를 얻고 상근인력을 두고 싶다면 능력껏 그 당이 결정할 문제다.
그런데 우리 정당법은 왜 정당 구성원들의 조직 구성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게 되었을까? 2004년 3월 이전까지 우리나라 정당들은 ‘중앙당과 국회의원 지역선거구를 단위로 하는 지구당으로 구성’하고 ‘필요할 경우 시도에 당지부를, 구시군에 연락사무소를 둘 수 있’었다. 그런데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당원협의회 등의 사무소를 둘 수 없’게 됐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당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지구당제도를 완전 폐지”(‘2004년 정당법 개정 이유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당시 ‘지구당 폐지’ 입법이 이루어진 것은, 지구당 사무소 운영을 위한 정치자금 조달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기업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던 정치인들은 ‘지구당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당원들이 내는 당비나 후원금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주요 정당들은 ‘당원 활동을 지구당 사무소가 아닌 온라인 기반으로 바꾸어 돈 안 드는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대안에 합의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현행 제도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당들의 당비 내는 당원 총수는 16만여명(2004년)에서 252만여명(2022년)으로 16배가 늘었다. 여전히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당의 정책과 공천, 정당 운영의 주요 결정을 하는 정당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정당도 있다. 당원들의 토론과 숙의를 거쳐 상향식으로 당의 주요 결정을 하려는 정당이라면, 다양한 곳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이 만나 정보와 의견을 나누어야 하고, 이를 위한 공간이나 인력도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만나건 오프라인에서 만나건 그건 그 당에서 정할 문제다. 지금은 ‘지구당 허용’이 아니라 정당의 조직구성권을 정당 구성원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월등히 능력이 좋아진 국세청, 민주적으로 훈련된 시민들과 정치적 경쟁자들의 감시로 해결할 일이다.
“이래서 반대합니다”
“과거의 부정·편법 살아날 것이다”
송경재 | 상지대 교수(비교정치 전공)
정치권에서 지구당 부활이 논의되고 있다.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이들의 요지는 간단하다. 2004년 지구당 폐지 이후 정당이 중앙당 중심 집권화된 구조가 만들어졌고 풀뿌리 기반의 상향식 정당운영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지구당 폐지의 큰 이유는 불법 정치 자금 때문이었다. 지구당 위원장들은 지역 토호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고, 사업가들은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구당 위원장에게 후원금을 냈다. 일종의 정치보험(?)인 셈이었다. 그렇지만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제 ‘공직선거법’이 강력해 정치 자금이 과거보다 투명화한 상황과 무엇보다 지구당이 없어 선거 때 정치신인과 청년들의 공정한 후보 경쟁이 어렵다고 비판한다.
정치 이론적으로 지구당은 정당구조 민주화와 풀뿌리 민주주의, 신인들의 정치 충원 확대 등 장점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론을 떠나 한국 정치라는 현실에서 필자가 평가하기에 지구당 부활의 정치·사회적 편익은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크게 5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지구당 폐지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정치 자금이 현재 투명해졌는가를 확인하면 분명하다. 당장 지난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모두 정치 자금 문제로 몇 차례 곤욕을 치렀고 당사자는 징계, 탈당,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다. 그나마 양성화되었다는 정치 기부금 역시 기업 후원, 쪼개기 후원, 양다리 후원 등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지구당 사무실, 유급 직원이 필요하다. 필연적으로 과거의 부정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무엇보다 정치의 주인인 국민은 여전히 지구당 부활에 부정적이다. 그만큼 국민의 지구당에 대한 인식은 정치인 줄서기, 돈봉투, 금권 등 부정적인 트라우마가 크다는 것이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여론조사업체가 6월10일~12일까지 18살 이상 남녀 1005명에게 전화 면접 조사 결과, 지구당 부활에 대해 ‘찬성한다’ 20%, ‘반대한다’ 46%, 모름/무응답 33%로 나타난 것이 방증한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조).
셋째, 인공지능(AI) 디지털 사회에서 오프라인 지구당의 정치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당과 젊은 세대의 소통방식이 유튜브, 소셜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화하고 있는데, 오프라인 지구당이 풀뿌리 민주주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맞벌이와 경제활동에 짓눌린 서민들은 참여하기 어렵고, 과거처럼 일부 당원이나 정치적 연줄을 대려는 사람들만의 공간이 될 것이다. 또 그 비용은 정치자금으로 충당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넷째, 의외로 지구당 부활이 정치신인과 청년 정치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새로운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은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경우 지역구 활동에 어려움이 있고, 정치신인이 불리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지구당을 부활하면 정치신인과 청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기득권을 가진 기성 정치인이 더 유리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지구당의 민주적 운영·의사결정 없이는 정치신인에게 지구당 운영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숨겨진 정치적 의도 또한 거론해야 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발화한 지구당 부활은 근본적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당 이해관계가 깔린 것이란 의구심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총선 과정에서 지구당이 없는 정치신인이나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이지만, 실제 원외 위원장을 기반으로 하는 한 전 비대위원장의 지지기반 강화와 국민의힘 사정이 반영된 계산이 깔려 있다. 22대 총선의 기록적 패배 이후 수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원외 위원장들이 지역을 관리할 수 있는 지역구 부활을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문화라는 전제조건이 없다면 지구당 부활은 정치인만의 문제이지, 국민의 관심사는 아니다. 오히려 현재도 정치 유튜브, 종편 뉴스, 소셜미디어 등 정치 과잉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지구당 부활로 더 피로감이 가중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구당 부활 논의는 정치권과 정치인들만의 의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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