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9년 6개월 이화영 판결문 속 이재명
● 이화영, 뇌물 및 정치자금법·외국환거래법·증거인멸교사 ‘유죄’
● 이화영 변호인 “이화영 유죄 판결 = 이재명 유죄 추정 유력 문서 될 것”
● 법원 “이화영, 이재명에게 ‘보고’해 정책 기획·추진 권한 있어”
● 지난해 檢 구속영장 청구서 “이재명 몰랐을 리 없어, 대통령 되려고 저지른 비리”
● 한동훈 띄운 ‘헌법 84조’ 의견 분분 ‘당선 무효’ vs ‘재판 중단’
이날 재판부(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는 이 전 부지사로 인해 쌍방울그룹이 북한 스마트팜 사업 관련 비용, 이재명 대표(당시 경기지사) 방북 관련 비용 등으로 경기도 대신 북한에 대납한 금액이 총 800만 달러임을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부지사가 방용철 전 쌍방울그룹 부회장 등과 공모해 쌍방울그룹 임직원들을 동원해 394만 달러를 신고 없이 반출하고,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 없이 200만 달러 상당을 북한 조선노동당에 지급했다는 공소사실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경기도 재직 시절 쌍방울그룹 측으로부터 법인카드 등을 통해 1억763만 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사실도 인정, 유죄로 판단했다. 또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그룹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억1831만 원을 부정 수수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증거인멸 교사 혐의 또한 유죄를 선고했다.
"당연히 그쪽에 말씀드렸다"
이러한 판결에 세간의 시선은 이재명 대표에게로 쏠린다. 이 전 부지사의 혐의에 이재명 대표가 관련됐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5월 21일 보석심문 기일에서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인은 "이재명 대표가 피고인과 대북 송금 사건 공동피고인으로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공소사실 기재상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며 "피고인에 대한 유죄판결은 향후 이 대표에 대한 유죄를 추정하는 유력한 재판 문서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이화영 전 부지사 판결에서 엿볼 수 있는 이재명 대표의 혐의 관련성은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 송금' 관여 및 이에 대한 '제3자 뇌물수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여부다. 제3자 뇌물이란 부정한 청탁을 받고 타인에게 혜택을 주게끔 하는 것을 말한다. 도 자체 규정, 대북제재 등으로 경기도가 대북 송금에 어려움을 겪자 쌍방울그룹에 이를 불법적으로 대납 및 송금토록 했다는 게 골자다.
‘신동아'가 입수한 이 전 지사 판결문에 따르면 2018년 12월 대북 송금에 어려움을 겪던 이 전 부지사는 서울 중구 신당동 쌍방울그룹 사옥에서 김성태 전 회장에게 "북한과는 무조건 잘될 것이다. 대북제재만 풀리면 할 사업이 너무나 많다. 500만 달러가 5조가 될 수도 있다" "이재명 지사가 잘되면 쌍방울 생각해 주지 않겠느냐" 등의 말로 대납을 권유했고, 이에 김 전 회장은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를 이재명 대표 대신 내주고 그의 도움으로 대북사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의 부탁으로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함으로써 경기도가 쌍방울을 지원할 것으로 신뢰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사유를 상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김 전 회장이 법정에서 "당시 이 전 부지사에게 이를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했느냐고 물어봤을 때, 이 전 부지사가 '당연히 그쪽에 말씀드렸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한 점도 사실로 봤다.
재판부는 경기도가 쌍방울그룹이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하기로 한 이후 본격적으로 대북 지원사업을 추진한 것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경기도는 김성태 전 회장이 2018년 12월 29일 중국을 다녀오고, 2019년 1월 17일 북한 측과의 협약식 체결에 참석하는 등 그의 중재를 통해 북한과 더 적극적으로 협력 사업을 추진할 동력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쌍방울그룹이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2019년 1월 17일 협약식 상황도 의미 있게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날 쌍방울그룹이 북한 측과 체결한 협약식에 경기도 소속 공무원들도 참여했으며, 협약식을 마친 후 가진 저녁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500만 달러, 제 돈으로 하게 됐다"고 북한 측에 말했고, 이재명 대표와 통화하며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는 김성태 전 회장의 진술에 따른 내용인데,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며 상호 부합한다"며 신빙성을 인정했다.
"간접적으로 이재명 공범으로 본 것으로 읽혀"
재판부는 쌍방울그룹의 이재명 대표 방북 비용 대납에 대해서도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강력하게 추진할 동기가 있었다"며 혐의 근거를 인정했다. "2018년 9월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단 명단을 발표했는데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지사가 포함된 반면 이재명 대표는 제외됐다"며 "‘청와대가 차기 대권 주자로 박원순 시장을 지목했다'는 취지의 보도도 나와 이 전 부지사가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재판부는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태평화 국제대회'에서부터 이 대표의 방북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고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송명철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실장이 "이재명 지사가 방북하면 자신이 담당할 것"이라며 "백두산에 갈 때도 최신형 헬리콥터, 차량을 준비하고 길거리 환영회도 동원해 문재인 대통령이 왔을 때보다 크게 행사를 치르겠다"고 약속하자 이 전 부지사는 "좋다"고 답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같은 달 쌍방울그룹이 방북 비용 가운데 일부인 70만 달러를 북측에 건넸고, 이때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를 통해 이 대표와 통화하면서 "북한 사람들 초대해서 행사 잘 치르고, 저 역시 방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재판부가 스마트팜, 이 대표 방북 등 경기도의 대북사업에서 김 전 회장이 이 대표와 두 차례 통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의 요청에 따라 이 대표의 방북 비용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면 김성태 전 회장이 이미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를 대납한 상태에서 또다시 위험을 감수하고 3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추가로 북한 측에 지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전 부지사의 역할에 대해 "남북경제협력사업 등 정책을 발굴하고 이를 경기지사에게 보고해 기획·추진할 수 있는 포괄적·실질적인 직무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는 이 전 부지사의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정책 및 사업 추진에서 이 대표에게 보고가 필요했다고 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이 대표가 "대북사업 관련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와 배치되는 판단이다. 이 대표가 스마트팜 비용, 방북 비용 대납 등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인 만큼 의미가 큰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 A씨는 "본 판결의 기소 범위가 이재명 대표와 닿지 않아 직접적 언급은 없었을 뿐, 재판부는 이재명 대표가 해당 사업에 대해 알고 있었으리라고 보고 있는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이 대표를 공범으로 봤다고 읽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6월 12일 검찰은 제3자 뇌물수수, 외국환거래법 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등 혐의로 이재명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엔 "(이 대표가) 경기도 사무와 도정을 총괄하는 최종 의사결정권자"라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결재 없이 이 전 부지사의 사업이 진행될 수 없었다고 본 것.
이번 기소는 지난해 9월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이 대표를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 9개월 만에 다시 이뤄진 것이다. 지난해 기소 때도 검찰은 이 대표가 '최종 결재권자'라는 관점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당시 구속영장 청구문에서 검찰은 "2018년 7월 1일 경기지사로 취임한 이후 이 대표는 중요 사항에 대해선 누락 없이 자신에게 사전 보고를 철저히 하도록 재차 지시하는 등 도정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전결과 상관없이 모두 보고받는 체계를 확립했다.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대통령이 되고자 경기지사의 지위를 남용해,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과 뒷거래를 한 부패 비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표는 사실무근이라는 태도다. 6월 12일 국회에서 "검찰의 창작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고, 6월 1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공판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할 때는 "대북 송금 사건은 결국 희대의 조작 사건으로 밝혀질 것"이라며 "언론이 검찰의 애완견처럼 (검찰이) 주는 정보를 받아서 왜곡·조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며 여권에서는 '헌법 84조'를 쟁점으로 띄웠다. 이재명 대표가 2027년 21대 대통령선거 때까지 재판에서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채 당선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대선 이전에 판결 나와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포문을 열었다. 6월 8일 한 전 위원장은 SNS에 "(헌법 84조는 민주당이) 재판을 지연시켜 형사피고인을 대통령 만들려는 상황에서는 국가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썼다. 이튿날에는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집행유예만 확정돼도 대통령직을 상실해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썼다.6월 12일 나경원 의원은 SNS에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서 집행유예만 확정되면 대통령직을 상실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치와 상식, 사법부 독립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에서나 기대할 수 있을 법한 일"이라며 "이재명 대표 본인, 그리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각들을 보면, 그 기대와 예상은 허망하다"고 썼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직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해석 문제가 없지만 재직 전 재판이 시작된 범죄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소추'를 기소로만 좁게 해석할지, 공소를 유지하며 재판을 진행하는 것까지로 확대 해석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 84조는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소추는 수사부터 기소까지를 뜻한다는 것은 사법절차의 기초 상식"이라고 했다. 이어 "재판 중인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때에도 재판은 당연히 계속돼야 하고 유죄 확정판결을 받으면 대통령직을 상실한다"고 덧붙였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 취지를 보면 형사소추는 결국 형사재판을 개시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이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형사재판을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곧 진행 중인 재판도 멈춰야 한다는 뜻"이라면서 "국가 대표가 재판을 받으면서 어떻게 국가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느냐"고 했다.
헌법재판소 출신 법조계 관계자 B씨는 "헌법을 만든 사람들도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해서 생긴 논란"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법이든 빈틈이 있게 마련인데, 이재명 대표의 상황이 딱 그렇다. 이렇게 많은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유력 대권 후보 물망에 오르고, 심지어 당선할 가능성도 제일 높은 날이 올 줄 알았을까. 특히 이번 이화영 전 부지사 판결문을 살펴보니 이 대표가 더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긴 어려울 성싶더라. 사법 리스크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27년 대선 이전에 판결이 나면 문제 될 일이 없다. 사법부가 정치적 부담을 이겨내고 빠르게 판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받는 재판만 4개… 커지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
윤석열 정권 들어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게 행한 기소는 총 5건이다(백현동 재판은 대장동 등 재판에 병합). 검찰은 2022년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같은 해 9월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3월엔 대장동 개발 비리·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10월 12일·16일엔 각각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위증교사 혐의로 재판에 넘긴 바 있다. 여기에 검찰은 이 대표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업무상 배임)과 20대 대선 경선 당시 쌍방울의 거액 쪼개기 후원(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계속 수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비교적 쟁점이 간단한 공직선거법 재판과 위증교사 재판은 올해 안에 1심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반면 지난해 5월 시작한 대장동 등 사건 재판은 검찰과 변호인 측이 신청한 증인이 많고 쟁점이 복잡해 내년 하반기는 돼야 1심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유력 대권 주자인 야당 대표에 대한 판결이라 부담이 돼서 그런지 진행이 늦다"면서도 "속도 여부와 상관없이 이 대표의 혐의가 사라지지는 않는 만큼, 재판이 진행되며 이 대표가 느끼는 압박과 사법 리스크는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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