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막냇동생 밀어낸 구미현, ‘셀프 회장’됐다

정혜인 2024. 6.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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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합류 3개월 만에 2대 회장 취임
경영 경험 없는데 취임 첫 메시지마저 "매각"

오너가(家)의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던 아워홈이 드디어 새 대표이사를 선임했습니다. 바로 고(故) 구자학 아워홈 선대회장의 둘째이자 장녀인 구미현 씨입니다. 구미현 씨가 지난달 31일 열린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스스로 대표이사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던 만큼 그리 놀라운 소식은 아닙니다. 눈길을 끄는 소식은 따로 있었는데요. 바로 구미현 씨가 스스로 '회장'에 올랐다는 점입니다.

구자학 선대회장이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 식품서비스 부문을 들고 독립한 이후 아워홈에서 회장 직함을 단 건 구자학 선대회장 뿐입니다. 아워홈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구본성 전 부회장, 구지은 전 부회장도 회장까지 오르지 못했습니다.

구자학 선대회장이 2022년 5월 작고한 후에도 2년여 간 아워홈 회장은 공석이었습니다. 그 공석을 채운 게 구미현 회장입니다. 구자학 회장의 뒤를 이은 2대 회장인 셈이죠. 게다가 구 회장의 남편인 이영열 씨도 부회장을 달았습니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아워홈의 오너 남매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건 2015년인데요. 그간 경영권 분쟁의 주인공은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과 막내 구지은 전 부회장이었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구자학 선대회장의 유일한 아들이며 아워홈의 최대주주입니다. 구지은 전 부회장은 남매들 중 가장 오래 회사 경영에 참여했고, 아워홈의 2대 주주죠.

당연히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지은 전 부회장 중 누가 구자학 선대회장의 뒤를 잇느냐가 관심사였지, 구미현 회장은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구미현 회장은 아워홈 4대 주주이긴 하지만 지분율(19.28%)도 4남매 중 가장 적습니다.

그러나 구미현 회장은 이 경영권 분쟁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지은 전 부회장의 지분율이 모두 50%도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구미현 회장은 때로는 오빠의 편에 섰고, 때로는 동생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때그때 경영권 분쟁의 판세를 결정했습니다. 

구미현 회장이 직접 등판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구미현 회장은 2021년 구지은 전 부회장의 손을 잡았다가, 2022년에는 다시 오빠 구본성 전 부회장의 편으로 돌아섰는데요. 구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정기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선임되면서 처음으로 이사회 멤버가 됐습니다. 이영열 부회장도 이때 함께 사내이사가 됐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아워홈 대표이사 재직 시절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직접 사내이사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때문에 그의 우군인 구미현 회장과 남편 이영열 부회장이 대신 사내이사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구미현 회장은 마침내 대표이사 회장 자리까지 꿰찼습니다.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지도 않았던 구 회장이 아버지의 뒤를 이은 후계자가 된 겁니다. 이 부부가 아워홈 사내이사에 오른 것이 불과 3개월여 전이라는 점, 구지은 전 부회장의 퇴임으로 이사회를 장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셀프 고속승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경영 경험 전무한 회장

하지만 구 회장 부부가 얼마나 준비된 경영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습니다. 구미현 회장은 아워홈 사내이사에 선임되기 전까지 가정주부로 지냈다고 합니다. 남편 이영열 부회장은 전 한양대 의대 교수, 즉 의사였죠. 회사 경영 경험이 없는 부부가 단숨에 회장과 부회장에 오른 겁니다.

이 때문에 아워홈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우려섞인 시선이 나오는 게 당연했습니다. 아워홈 노조도 "경영에 참여해본적 없는 이들이 회사를 점령하고 있다"며 "사내이사에서 즉시 사퇴하라"고 항의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죠.

아워홈 노조가 5월 31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단순히 경험이 없다는 것만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구미현 회장과 이영열 부회장은 사내이사에 선임된 이후에도 업무를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출근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5월 임시주총에도 참석하지 않았는데요. 직전 대표이사였던 구지은 전 부회장이 의장으로서 참석한 것과 달리 구미현 회장과 이영열 부회장은 대리인을 대신 출석시켰습니다.

특히 구지은 전 부회장의 임기가 만료된 이후에도 신임 대표이사를 뽑을 이사회를 열지 않아 2주가 넘도록 경영 공백까지 발생했습니다. 이 기간 이미 임기가 끝난 구지은 전 부회장이 임시 대표로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구 회장과 이 부회장에게 사내이사로서의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베일에 싸인 회장

게다가 구 회장과 이 부회장 부부에 대한 정보마저 상당히 제한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신임 경영진을 선임하면 이사들의 약력, 사진 등을 공개합니다. 이 정보들이 중요한 건 경영진, 특히 대표이사가 회사를 대표하는 동시에 회사의 업무집행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워홈은 지난 18일 신규 경영진 인사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면서도 구 회장과 이 부회장에 대한 정보는 단 한 개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워홈 신임 대표이사 회장은 구미현 사내이사가 선임됐다", "이영열 사내이사는 부회장에 올랐다"는 문장이 다였습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구 회장과 이 부회장을 대신해 '얼굴' 역할을 한 건 새롭게 선임된 사장입니다. 이번 인사에서 아워홈은 경영총괄사장에 이영표 씨를 선임했는데요. 아워홈이 공개한 약력에 따르면 이영표 경영총괄사장은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93년부터 아워홈에서 일하며 구매물류, 재무, 회계 등 여러 부서를 두루 거쳤습니다. 특히 아워홈 기획실에서 구자학 선대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오래 근무했다고 하네요.

심지어 취임 인사말도 대표이사인 구 회장이 아니라 이 사장이 먼저 내놨습니다. 최근 오너간 경영권 다툼 때문에 회사 내부가 상당히 혼란스러운데요. 이런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이 사장은 "'회사 안정과 경영진 신뢰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임직원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임직원이라면 이런 말을 대표이사에게 듣기를 기대할텐데, 그 역할을 대신한 건 신임 사장이었죠. 덧붙이자면 이영표 사장은 사내이사도 아닙니다.

취임하자마자 "매각"

구미현 회장은 취임 이틀째인 지난 19일에야 취임 인사말을 내놨는데요. 이마저도 회사 매각에 대한 의지를 재차 천명하고 그간의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일반적인 취임사와는 다소 결이 다릅니다.

실제로 구 회장의 취임사에는 "주주간 경영권 분쟁을 근원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전문경영인에 의한 합리적인 회사 경영 즉, 사업의 지속 발전을 지향하는 전문기업으로 경영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는데요. 결국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뜻입니다.

취임 이틀만에 회사를 매각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겁니다. 취임 후 첫 행보로는 상당히 이상합니다. 구 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스스로 대표이사가 된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또 구 회장은 "창업주 구자학 선대회장의 창업 정신과 아워홈의 발전을 위해서 2016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회사 대내외 이미지 추락과 성장 동력 저하를 묵과할 수 없었다”면서 회사에 대한 우려와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구미현 회장이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경영권 분쟁을 지속시킨 장본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모순입니다.

아울러 “최근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배당금 등 이슈와 관련해 지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바로잡고자 한다"는 내용도 취임사에 포함돼 있는데요. 앞서 배당금을 과도하게 요구했다고 알려진 데 대해 부인하는 내용인데, 이 역시 취임사보다는 해명문에 가깝죠.

구미현 회장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맞은 아워홈.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은 왜일까요. 구 회장이 그토록 원하는 매각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고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일 겁니다. 향후 구 회장이 아워홈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갈지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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