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본헤드 플레이, 그러나 재치로 만회한 박건우··· 혼란 속 빛난 베테랑의 경험
치명적인 실수가 될 뻔한 출발이었지만, 기지로 만회했고 최상의 결과를 끌어냈다. 어느새 프로 데뷔 16년 차,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박건우의 경험이 빛났다.
NC와 두산이 맞대결한 19일 잠실, 6회초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박건우가 2루, 맷 데이비슨이 1루에 위치한 1사 1·2루였다. 권희동이 친 뜬공 타구가 내야에 갇혔다. 두산 유격수 박준영이 손쉽게 잡는 듯 하더니 공을 떨어뜨렸다. 더블플레이를 위한 고의 낙구로 비쳤다. 박건우와 맷 데이비슨이 황급하게 다음 베이스를 향해 스타트를 끊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플레이였고, 해서는 안 될 플레이였다. 2루심이 인필드 플라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박준영이 공을 줍자마자 바로 3루로 던졌다. 박건우가 3루 베이스 몇 발짝 앞에서 멈춰 섰다. 태그 플레이로 아웃이 되고 그대로 이닝이 끝나는 게 당연해 보이던 상황, 그런데 두산 3루수 전민재가 태그할 생각은 하지 않고그저 서 있기만 했다. 인필드 플라이라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였다. 잠시 전민재와 마주 서 있던 박건우는 슬쩍 방향을 틀더니 슬금슬금 3루로 발걸음을 옮겼고, 갑자기 속도를 내더니 순식간에 3루를 밟았다. 전민재는 그때까지도 태그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진작 아웃이 돼야 했을 박건우가 3루까지 살아 들어갔고, 이영하의 폭투 때 홈까지 밟았다. NC는 귀중한 추가점을 냈고, 8회초 데이비슨의 2점 홈런까지 터지며 두산을 7-5로 꺾었다.
경기 후 박건우는 “사실은 본헤드 플레이였다”고 말했다. 인필드 플라이가 나왔으니 애초에 뛰면 안됐다는 얘기다. 박건우는 “인필드 플라이 콜을 듣지 못해서 우선은 뛰었다. 뛰었는데 공이 이미 도착해 있더라”고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박건우는 “큰일 났다. 태그 당하면 이제 끝이다 하는 생각으로 멈춰서 있다가 모르는 척하고 3루를 밟았다”고 추가 설명했다.
순간적인 기지로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았지만, 박건우는 “다시는 안 나왔으면 하는 플레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결과야 어떻든, 주자도 수비도 모두 잘못한 플레이였기 때문이다. 본인의 전 소속팀 후배 선수의 실수가 겹친 탓에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박건우는 “(전)민재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건우는 이날 타석에서도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1볼넷으로 맹활약했다. 두산 선발 최원준을 상대로 1회 첫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났지만, 3회 비거리 125m 2점 홈런을 때렸다. 박건우는 홈런 친 상황에 대해 “첫 타석 때 몸쪽 높은 직구가 들어왔는데 타이밍이 늦었다. 그래서 또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1S 3B 때 몸쪽 높은 직구가 하나 들어올 거 같았다”면서 “바깥쪽이나 변화구가 들어오면 그냥 헛스윙 하자는 생각으로 몸쪽 직구만 보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위치에 딱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노림수가 제대로 통한 셈이다.
박건우는 이날까지 시즌 타율 0.355로 SSG 기예르모 에레디아(0.369)에 이어 리그 2위다. 타격왕 욕심이 정말로 없느냐는 말에 박건우는 두 번, 세 번 고개를 가로 저었다. 타격왕과는 아무래도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 박건우지만 타율 1위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2017년이 가장 아까웠다. 타율 0.366으로 KIA 김선빈에 4리 차이로 밀렸다. 20홈런-20도루 기록이 가시권에 들며 자신도 모르게 시즌 막판 스윙이 커졌다. 딱 20홈런, 딱 20도루로 기록은 달성했지만 타율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박건우는 당시 기억을 돌이키며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건강해야 가능한 거 같다. 거짓말이 아니라 이제 타격왕 타이틀은 정말 하나도 신경이 안 쓰인다”고 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통산 3할 타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건우는 “특히 우타자가 통산 3할을 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래서 이대호, 김태균 선배가 정말 대단하다. 다리가 빠른 편도 아니지 않나. 진짜 리스펙트 한다”고 말했다.
박건우는 이날 통산 2504안타로 KBO 통산 최다안타 타이기록을 세운 손아섭에게도 축하의 말을 전했다. 박건우는 “당장 내일 기록이 나올 것 같은데, 미리 너무 축하드린다”며 “아섭이 형 같은 선수가 있기 때문에 저도 더 노력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것 같다. 후배 선수들도 그런 선수 보면서 더 성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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