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마유현 "팔도 돌며 비볐다"… 전국을 비빈 농심 배홍동

황정원 기자 2024. 6. 2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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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배홍동, 일부 대형마트서 판매 1위 '기염'
마유현 책임, 전국 팔도 돌며 '비빔소스' 비법 연구
맛집 레시피서 장점만 찾아 '시원하고 깔끔한 맛' 구현
마유현 농심 스프개발팀 연구원은 배홍동 비빔면의 성공 비결로 '비빔소스'를 꼽는다. /사진=임한별 기자
"농심 비빔면 만들기 전에 전국 팔도의 비빔면 다 먹어봤죠."

마유현 농심 스프개발팀 연구원(책임)은 배홍동 개발 당시 '비빔소스 비법을 찾아' 팔도를 유랑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지난 4월과 5월 식품업계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일부 대형마트에서 농심 배홍동이 팔도비빔면을 제치고 판매 1위에 오른 것이다. 대형마트 3사 가운데 두곳에서 집계된 결과다. 팔도비빔면이 1위를 내준 것은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마 책임은 배홍동 프로젝트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2006년 냉동식품개발팀으로 농심에 입사한 그는 1년 6개월 뒤 스프개발팀으로 옮긴 후 16년째 농심의 '맛'을 책임지고 있다. 짜파게티 더블랙, 보글보글부대찌개면, 배홍동이 그의 대표작이다. 차별화된 맛이 무엇보다 중요한 라면업계에서 스프는 제품의 흥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1등을 지키는 건 어렵다. 1등을 추격하는 건 더 어렵다. 두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면 어떨까. 농심 라면 연구팀 얘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소매점 라면 판매 1위는 농심 신라면으로 383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991년 1위에 오른 후 33년째 부동의 1위다.

비빔면으로 장르를 옮기면 농심은 반대 입장이 된다. 비빔면 시장은 1984년 팔도비빔면 첫 출시 이후 40년째 팔도가 독주하고 있다.

수많은 비빔면 신제품이 팔도비빔면에 도전했다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단종'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제대로 '비벼볼 만한' 적수가 나타난 건 2021년이었다. 농심 배홍동이 등장한 것이다.



자연스럽고 시원한 맛… 비법은 배·홍고추·동치미


마유현 농심 스프개발팀 연구원이 배홍동 소스 재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출시 직후 단숨에 비빔면 랭킹 2위에 올라선 배홍동의 비결은 무얼까. 마 책임은 '비빔소스'를 꼽았다.

"개발 초기에는 면을 차별화하려고 했어요. 미역초장면, 도토리 비빔면, 칼국수비빔면 등 다양한 시도를 했죠. 하지만 매출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어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얻은 결론은 '기본에 충실하자'였어요."

면을 결정하자 다음으로 소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기본 면으로 가되 소스에 포인트를 주기로 했어요. 차별화된 농심만의 소스가 필요했죠. 그래서 지역별로 맛있다고 소문난 비빔면에 관해 공부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비빔면 TF(태스크 포스)팀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비빔국수 맛집을 찾아다녔다. 서울부터 시작해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를 두루 다니며 소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셰프들과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강원도는 투박한 맛이에요. 들기름을 많이 쓰고 동치미 육수를 쓰죠. 충청도는 깨소금을 많이 넣고 장맛이 나요. 경상도와 전라도는 남쪽 지방이다 보니 간이 센 편이고요. 경기도는 백김치 육수에 고추를 썰어 넣어 칼칼하면서 시원해요."

TF팀은 전국 팔도의 소스 중 맛있는 레시피만 쏙쏙 선별했다.

"기존의 비빔국수가 고추장 베이스라 매콤달콤하면서도 살짝 텁텁한 맛이었던 것에 착안했어요. 새 비빔면은 '시원하게' 만들자는 걸로 의견이 모였죠."

우선 시원하고 칼칼한 매운맛을 위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대신 홍고추를 갈아 썼다. 요리에서 텁텁한 맛을 없애기 위해 셰프들이 종종 쓰는 방법이다. 단맛은 보통 과일 재료가 담당하는데 시원하면서도 개운한 단맛을 내는 배가 당첨됐다.

마지막으로 새콤한 맛은 단순히 톡 쏘는 자극적인 신맛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시원한 맛이 필요했다. 막국수와 냉면 육수로 사랑받는 동치미가 낙점됐다. 배·홍고추·동치미가 만난 소스 '배홍동'은 이렇게 탄생했다.



배홍동 소스도 인기… 진미채·골뱅이무침에 활용


배홍동 비빔면 인기에 힘입어 배홍동 쫄쫄면, 배홍동 큰사발면, 배홍동 만능소스 등이 연이어 출시됐다. /사진=농심
맛 재료가 정해졌으니 이제 황금 비율을 찾을 차례였다. 소스 재료를 다양한 비율로 섞어 1차, 2차, 3차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샘플을 만들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나가는 작업이 이어졌다.

마 책임은 연구원 입장에서 일반 국물라면 보다 비빔면 종류가 훨씬 개발에 드는 공이 많다고 설명했다.

"농심 연구팀은 면, 스프, 별첨 세분야로 나뉘어 있어요. 일반 국물 라면을 개발할 때는 완제품에 가까워지기 전까지 각자의 분야만 집중해서 연구하고 테스트를 합니다. 비빔면은 개발할 때 면과 소스, 별첨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세가지를 다 먹어봐야 해요. 자연히 시간과 공이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이 아깝지 않게 배홍동은 출시되자마자 소비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출시 첫해 4개월 만에 누적 판매 2500만개를 돌파하더니 진비빔면을 밀어내고 2위 자리를 꿰찼다.

배홍동 비빔면 인기에 '배홍동 만능소스'도 출시됐다. 소스를 활용한 조리법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마 책임은 "비빔면이 원래 삼겹살이나 차돌박이 같은 고기류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잖아요. 집에서 고기 드실 때 한번 곁들여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가정에서 드시는 다른 요리에 응용해도 좋아요. 특히 진미채·골뱅이무침은 정말 맛있답니다"라고 귀띔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때 비빔면 시장점유율 80%에 달했던 팔도비빔면은 최근 후발주자들의 선전에 50%까지 점유율이 떨어졌다. 이마저도 과반이 넘는 수치이지만 아무도 깨지 못했던 1위의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농심 배홍동이 있다.

배홍동은 출시 첫해인 2021년 23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래 올해 5월까지 4년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황정원 기자 jw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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