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비정규직-사용자, 삼체 계급을 넘어 [세상읽기]
조건준 | 아무나유니온 대표
이게 없으면 재미가 있을까. 드라마나 소설에는 자주 등장한다. 엇갈린 감정으로 예상 못 한 사건을 만드는 삼각관계 얘기다. 현실에서 닥치면 아프다. 사회적 차원의 삼각관계도 있다. ‘정비사’가 그렇다. 고장 난 것을 고치는 정비사가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사용자’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정비사’는 우리가 마주해온 삼각관계다.
물체에도 삼각관계가 있다. 오티티(OTT) 시리즈로 나온 소설 ‘삼체’로 인해 널리 알려진 삼체 문제는 고전물리학의 난제였다. 우주에 떠 있는 두 별처럼 두개의 물체 사이에 작동하는 힘과 그에 따른 움직임은 예측 가능하다. 여기에 물체 하나만 추가해 삼체(three-body)가 되면 물체가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이 어렵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삼체 문제의 일반 해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연인의 삼각관계 결과는 대략 몇가지로 예측할 수 있다. 삼각관계를 벗어나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쌍방관계, 물체로 보면 이체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삼각관계에 빠져 셋 모두 파멸할 수도 있고 셋 모두 관계를 벗어나거나 극히 어렵지만 동시에 여럿을 사랑하는 ‘폴리아모리’에 이를 수도 있다.
‘정비사’ 삼각관계는 정규·비정규직이 단결하여 사용자에게 맞서거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열해 사용자가 이익을 얻거나, 서로 얽혀 셋 모두 상처투성이가 되거나, 삼체가 역동적 균형을 이루는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전통적 노동운동은 첫번째의 노동 단결, 사용자는 두번째의 분열 유형을 좋아했다.
물체 사이에 수학적 계산이 가능한 힘이 작동한다면, 계급 관계에는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감정이 작용한다. 물체에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다면, 노사 관계에는 같은 기업과 산업에서 일하는 동질감과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이질감이 작동한다. 정비사 삼체에 작동하는 감정은 더 복잡하다. 비정규직은 사용자만이 아니라 정규직을 향한 감정을 갖는다. 엇갈리는 감정이다. 같은 노동자로서 선망도 있지만 원망도 있다. 때때로 비정규직은 사용자보다 정규직을 더 미워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향한 연민과 연대감만이 아니라 우월감도 있다. 사용자와 거리감보다 비정규직에 대한 우월감이 크면 비정규직에게 사용자처럼 갑질한다.
때때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정규직이 시험능력주의를 앞세워 차별에 앞장서거나, 극한 갈등과 소송을 통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거나, 직접 계약직이나 자회사를 거쳐 차별이 줄어드는 사례가 있다. 사례가 다양할 뿐 ‘정비사’ 삼체 문제의 일반 해법은 등장하지 않았다.
시민의 다수가 삼체 중 하나에 속한 당사자다. ‘정비사 삼체’는 사회를 바꿨다. 한국은 산업화-민주화-세계화-양극화를 경험했다. 노동시장이 나뉘면서 양극화는 심해졌다. 사회에 떠도는 능력주의-우월감-약자에 대한 갑질, 불안정 노동-박탈감-분노와 혐오, 보편적 가치보다 자기 이익에 붙들린 진영논리, 일터의 권리를 바라지만 노조를 싫어하는 모순된 생각은 ‘정비사 삼체’를 둘러싼 감정을 반영하거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치명타를 입은 것은 거대 양당을 넘어서려던 진보세력이다. 날아오르려면 탄탄한 활주로는 아니더라도 박차고 오를 기반이 필요하다.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이라는 양 날개로 날아오르려는 진보세력의 전략이 있었다. 그러나 핵심 기반으로 여긴 노동계급이 삼체의 덫에 빠지면서 망상이 되었다.
상황은 또 달라졌다. 노동시장은 비정규직 이름으로 담을 수 없는 단기계약직, 플랫폼 프리랜서, 독립계약자, 자영업자를 만든다. 노동시민은 일체도 이체도 삼체도 아닌 다체(multi-body)다. 독재라는 일체에 맞서 ‘민주 대 독재’의 이체 구도로 넘었던 민주노조운동은 ‘정비사’ 삼체 문제를 풀지 못했고, 컨베이어 대신 플랫폼이 깔린 사회공장에서 다체가 된 노동시민에게 해법이 되기 어렵다.
노동시장 분화에 따른 다양한 특성을 디테일하게 이해하는 ‘차이 사랑’, 각각의 특성에 맞게 권리를 찾아가는 ‘경로 다양성’, 이익을 다투는 삼체관계에서 호혜적 다체관계로 ‘차원 이동’ 등 새로운 해법이 절실하다. 한겨레 필진으로 초대에 감사하며 새로운 해법을 향한 소통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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