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24년 만에 ‘위험한 밀착’…‘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뭐길래
‘유사시 지원’ 실체는 전체 내용 봐야
정치적 합의 아닌 조약 형태로 체결
국내 의회 차원서 비준 절차 거쳐야
조약 체결 배경·향후 전망
푸틴 “서방 패권유지 목적 제재 맞설 것”
김정은 “두 나라 진보 훌륭한 궤도 올라”
두만강 국경 다리 건설해 육상 운송 확대
北 ‘외화벌이 노동자’ 파견 러 확대 관측
북한과 러시아가 19일 체결한 신조약은 ‘군사종속에 가까운 동맹→탈군사→대등한 준동맹’으로 북·러관계가 24년 만에 세 번째 변곡점을 맞았다는 선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구두 공개한 ‘체약 일방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지원’ 조항은 53년 만에 북·러가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조항에 가까운 합의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한반도 안보에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북·러는 냉전 시기 군사 종속이나 다름없는 동맹관계였고 이를 규정한 근거는 ‘조·소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이었다. 소위 ‘동맹조약’으로, 1961년 체결 당시 10년 효력의 한시적 조약이었고 연장을 거듭하다 1996년 종료됐다. 러시아는 이후 남북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폈고 2000년 북한과 다시 조약을 체결할 땐 친선조약 수준으로 군사적 연계성을 약화시켰다.
공동회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첫번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두번째)이 19일 평양 금수산영빈관에서 확대정상회담과 일대일 회담을 마친 뒤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체결을 발표하고 있다. 평양=AP연합뉴스 |
북한은 이달 하순 당 중앙위 전원회의 예고한 상태다. 의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도 뒤따라 열릴 전망이다. 북·러 신조약은 당 전원회의에서 올해 상반기 김 위원장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워진 뒤 7월 비준될 것으로 추정된다.
신조약에 담긴 ‘유사시 지원’의 실체가 무엇일지, 1961년 동맹조약에 과연 얼마나 가까울지는 향후 조약 내용 전체가 공개돼야 의미가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1961년 동맹조약은 1조에 ‘체약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소위 ‘자동개입조항’이 구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2조는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연합이나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 의무를 가진다’고 배타적 성격까지 분명히 담았다. 1961년 조약과 같은 동맹이라면 한반도 안보에 미칠 파장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의 참전문제가 부상하게 된다. 또 러시아의 남북 등거리 외교 기조 하에 나온 한·러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선언도 러시아 국내법적으로도 폐기된다는 의미가 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푸틴 언급에선 ‘상호 지원’이라고 표현돼, 지원의 내용이 뭔지, 이미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포탄 지원 정도인지, 개입인지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 현재 발언만으로 알 수 없다”며 “전문이 공개돼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북핵 개발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동병상련 처지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로 풀이할 수 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꾀하는 ‘다극화 세계’의 중요 파트너이자 어엿한 일원으로 북한을 끌어들이고, 북한도 핵 개발에 따른 ‘왕따’에서 벗어나 국제사회 입지를 강화하겠단 심산이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정상회담 이후 연 공동 언론발표에서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와 북한에는 독립적인 외교 정책이 있으며 협박과 강요의 말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서방이 정치, 경제 패권 유지를 목적으로 늘려온 수단인 제재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주도한 무기한 대북 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오늘 서명한 조약과 연계해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무기 거래 등을 포함한 군사 협력에 방점이 찍힌 발언으로 보이지만 경제·무역과 우주, 에너지 등 북한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수 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 가능성도 읽을 수 있다.
김 위원장도 “두 나라 관계는 정치와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호상협력 확대로서 두 나라의 진보와 인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보다 훌륭한 전망적 궤도에 올라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의도는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열린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확대 정상회담 명단에서도 감지된다.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6명이 참여한 북한 측에 비해 러시아 측 대표들은 13명으로 인원수가 북한 측의 두 배 이상이고 외교, 군사뿐 아니라 에너지, 교통, 철도, 우주, 보건 등 분야 수장이 참석했다.
아울러 러시아와 북한은 이번 조약 체결을 계기로 자체적인 무역·결제 시스템 구축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은 평양 도착 전 북한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금융제재를 무력화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제재와 감시 대상인 달러화를 대신해 루블화 거래를 확대해 루블화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러시아의 야심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약에는 과학과 의료, 교육 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 내용도 포함됐다. 과학 분야는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의 방러 당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수 있다고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만큼 러시아의 기술 이전이 한층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예진·서필웅·조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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