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당나라 대군을 막아내고 동북아 세력 균형을 지키다[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6. 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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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 6월 20일 당 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안시성 침공이 시작됐다.

이 전투는 당나라가 고구려 정벌에 나선 제1차 고당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다.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나라는 이 전투를 통해 고구려를 쉽게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고구려와의 전쟁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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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당태종 이세민 안시성 공격 개시
영화 '안시성'(2018) 특별판 포스터(NEW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645년 6월 20일 당 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안시성 침공이 시작됐다. 이 전투는 당나라가 고구려 정벌에 나선 제1차 고당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다. 고구려군이 3개월 가까운 끈질긴 항전 끝에 당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뒀다.

당시 고구려는 요동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이는 당나라의 북쪽 국경에 위협이 됐다. 이에 당 태종은 고구려를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군사 원정을 계획했다. 고구려 보장왕 4년 당 태종은 고구려 침공에 나서 주요 공격 목표로 안시성을 삼았다.

안시성은 요동 지역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당시 고구려의 북쪽 국경을 방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안시성에는 1만여 명의 고구려 병사가 주둔하고 있었다. 안시성 성주는 '양만춘'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사의 기록에는 없다. 다만, 구전으로 전하는 이름이다.

당군은 안시성을 포위하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고구려군은 뛰어난 성벽 방어 전술과 용맹한 백병전으로 당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당군은 토산을 쌓아 성벽을 넘고자 했지만, 고구려군이 토산 한쪽을 무너뜨린 후 이를 점령했다. 당군은 겨울이 다가오자 결국 퇴각했다. 당 태종이 안시성주가 쏜 화살에 맞아 한 쪽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사에는 없는 이야기다.

고구려군은 끈질긴 항전 끝에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쳤다.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나라는 이 전투를 통해 고구려를 쉽게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고구려와의 전쟁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게 됐다.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전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전투는 고구려의 뛰어난 군사력과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고구려의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동아시아 역학관계에서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 균형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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