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 '패밀리오피스' 활황… '경쟁력 1위' 싱가포르 향하는 부자들
[편집자주] 아시아의 '네번째 용' 싱가포르에 글로벌 자금이 몰린다. 싱가포르개발청(EDB)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싱가포르의 고정자산투자는 225억달러(약 23조원)를 기록했다. 10년 내 최고 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경쟁력 1순위 국가로 싱가포르를 꼽았다. 싱가포르가 홍콩 사태 이후 아시아 투자 요충지로 떠올랐고 최근 전자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미중 무역갈등 속 반도체 공급망을 확대할 것이란 기대다. 머니S는 동남아시아 기업금융(IB)의 거점지 싱가포르에서 K금융의 위상을 높이는 주역들을 만났다. 글로벌 IB 국가로 자리매김한 싱가포로의 현주소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짚어본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맞은편에 있는 머라이언 파크의 머라이언(Merlion) 동상은 머리는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인 가상의 동물로 오늘날 싱가포르를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특히 머라이언 상과 어우러진 도심 속 초고층 마천루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성공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나타내는 익숙한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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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시아 금융허브'로 떠오른 싱가포르에선 몇 년 새 패밀리 오피스 설립 붐이 일고 있다. '홍콩 사태'에 따른 지정학적 우려가 불거지면서 금융 환경이 악화되자 홍콩에 있던 금융투자업계와 대규모 자산가들의 자금이 싱가포르로 몰리면서다.
싱가포르의 외국인 투자자 친화적인 분위기도 대규모 자금이 싱가포르로 이동하게 된 결정적 요소로 꼽힌다. 싱가포르의 금융시장 규모는 홍콩에 비해 작지만 글로벌 기업 아시아 본부 수로 따지면 싱가포르가 우세하다.
싱가포르는 지리적으로도 동남아 중심에 있다. 이는 동남아 국가 중 금융과 무역이 가장 발달할 수 있었던 요인인데다 16개의 해저 케이블을 통해 대륙과 주변 섬나라 모두를 연결하고 있어 글로벌 기업금융(IB)을 영위하기에도 용이하다.
현지에서 만난 성준엽 미래에셋증권 싱가포르 법인 대표는 "싱가포르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아시아 진출 거점국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동남아시아 진출의 중심지로 삼아 사업을 확장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특히 패밀리 오피스 설립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정치적 안정성과 외국 인재에 대한 개방성이 그 이유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패밀리 오피스란 고액 자산가와 그 가문의 자금 운용, 자산 배분을 통한 재산 증식과 상속·증여·가업승계 등 최적의 방법으로 부를 관리하고 세대 간 이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자산관리 회사다.
크게 ▲싱글 패밀리 오피스(SFO) ▲멀티 패밀리 오피스(MFO) ▲가상 패밀리 오피스(VFO)로 나뉜다. 싱글 패밀리 오피스는 개인 지분으로 설립돼 특정 가문을 위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로 재단이나 신탁, 헤지펀드 등의 형태로 운영된다. 멀티 패밀리 오피스는 증권사, 보험사, 은행 등 금융투자회사가 여러 자산가의 자산을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다. 가상 패밀리 오피스는 정보 플랫폼을 통해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해외 자산가 유치에 적극적이어서 패밀리 오피스 설립이 용이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방안이 마련돼 있다. 패밀리 오피스를 만들면 취업비자를 지원하고 자산가 가족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점도 글로벌 부호들이 싱가포르로 모이는 요인 중 하나다.
싱가포르는 개인 최고 한계 세율이 22%, 법인세 단일 세율이 17%로 한국(개인 최고 한계 세율 49.5%·법인세율 26.4%) 대비 세금 부담이 적다. 싱가포르 세법 규정에 따라 싱가포르 소재 펀드 관리 회사를 통한 펀드는 소득에 대해 세금이 면제되는 점도 패밀리 오피스가 성장할 수 는 경쟁력으로 꼽힌다.
권기정 NH앱솔루트리턴파트너스 대표는 "기타 세법에 따른 면제와 과세 이연 제도를 갖추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탈세가 아닌 합법적인 절세가 가능하다"며 "싱가포르는 한국과 달리 이중과세 방지가 잘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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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싱가포르 두 국가의 패밀리 오피스 시장의 모델은 상이하다. 싱가포르에서는 싱글 패밀리 오피스가 주를 이루는 반면 한국에서는 대부분 금융사를 주축으로 한 멀티 오피스 패밀리 형태를 지닌다.
갈수록 고액 자산가의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 금융사들은 단순히 자산관리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회계, 법률, 부동산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 업무 제휴를 맺고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자산관리에 방점을 두다 보니 싱가포르처럼 가문의 부를 계승해 나가는 시스템을 갖추진 못했다.
한국은 싱가포르와 달리 상속세 및 증여세법과 자본시장법 규제가 싱글 패밀리 오피스 운영의 걸림돌로 꼽힌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은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또는 출자 총액의 5% 미만으로 보유할 때만 증여세가 면제된다. 신탁 형태로 운영되더라도 신탁 재산에 속하는 주식이 발행 주식 총수의 15%를 초과하면 그 초과 분은 의결권이 제약된다. 이로 인해 재단이나 신탁 형태로 패밀리 오피스를 운영해 가업을 승계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이중과세 문제도 한국의 싱글 패밀리 오피스 운영이 어려운 요소다. 패밀리 오피스를 운영하면 법인 원천소득에 대해 법인세가 부과되고 세후 소득의 배당 과정에서 다시 소득세가 부과된다.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한국의 금융환경은 싱가포르와 확연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어 싱글 패밀리 오피스 확대가 어려운 만큼 '한국형 패밀리 오피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권기정 NH앱솔루트리턴파트너스 대표는 "싱가포르는 기관이나 금융업계의 자금보다는 전 세계 거부들의 자산을 중심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WM(자산관리)를 토대로 원할한 투자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권 대표는 이어 "한국형 패밀리 오피스 시장을 확대 시키기 위해선 고액 자산가의 부가 패밀리 오피스를 통해 건전한 투자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법 등 제도적 보완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싱가포르=이지운 기자 lee101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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