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매력적인 오답, 그 하찮은 기술의 고도화

손현성 2024. 6. 2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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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영어 문제 일부를 최근 풀어봤다.

"다양한 유형에서 '매력적인 오답'이 배치됐다"는 입시 전문가의 관전평이 나온 과목, 그중에서 고비처라는 빈칸 추론 문항(33, 34번)이었다.

국어와 영어의 다양한 문제 유형에서 곳곳에 매력적 오답을 배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수 킬러문항을 덜어내고, 다수 매력적인 오답을 집어넣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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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4일 서울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이 1교시 국어 영역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영어 문제 일부를 최근 풀어봤다. "다양한 유형에서 '매력적인 오답'이 배치됐다"는 입시 전문가의 관전평이 나온 과목, 그중에서 고비처라는 빈칸 추론 문항(33, 34번)이었다. 지난해 9월 모의평가와 그해 11월 수능 때 들은, 왠지 그 거북한 표현을 또 듣자니, 그 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문제를 보니 읽을 의지를 꺾는 추상적 지문(33번), 추상적인데 한술 더 떠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아리송한 지문(34번)이 제시되고, 지문 속 주요 단어를 선택지에 두루 넣어 정답인 양 위장한, 그게 매력이었던 걸로 보였다. EBS 영어 강사의 해설 영상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문이 길고 처음에 무슨 말인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기 소거를 하든 뭘 하든 맞혀야 합니다." "말이 어려워 보기가 다 답 같죠."

'매력적인 오답'이 출제당국의 노골적인 변별 기술로 자리 잡는 듯하다. 지난해 6월 정부가 공정 수능과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킬러문항을 빼내겠다고 공언한 뒤부터다. 국어와 영어의 다양한 문제 유형에서 곳곳에 매력적 오답을 배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수 킬러문항을 덜어내고, 다수 매력적인 오답을 집어넣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출제당국 측에 서면 이해는 된다. 대학에 성적 줄 세우기 편의를 줘야 하니 변별 확보가 지상과제다. 27년 만에 의대 정원 확대 등으로 최대 규모의 졸업생이 응시할 테니 그 압박은 어느 때보다 크겠다. EBS 연계율까지 고려해야 하니, 매력적인 오답을 매력적인 돌파구로 여길 만하다.

변별 마련이 참 어렵다지만 과했던 걸까. 고교 교사들이 고3 가채점 분석 결과, 이번 영어 1등급(90점 이상)이 1.3%란 예측치를 내놨다. 입시업체도 1~2%대로 봤다. 매력적 오답이 넘쳐났다는 지난해 수능 영어(1등급 4.7%)보다도 낮다. 2018학년도부터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꾼 취지가 학습 부담 완화와 영어 구사 능력을 올리는 방향으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자는 것 아니던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간 안배 실패를 의도한 매력적 오답의 두루 배치는 학생의 학습 부담을 가중한다. 영어 듣기 빼고 읽기 28문항을 50분 내 풀면서 출제진이 작심하고 판 함정을 소거하려면 압도적 문제풀이로 유형별 풀이 기술을 익혀야 할 것이다. 사교육 의존이 더 커질 거다.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매력적 오답에 잘 대비해주는 강사를 찾고 싶다'는 글에, 강사 이름이 줄 잇는 댓글이 보인다.

영어 구사 능력 향상에 득될 리는 있을까. 월 2만9,000원이면 챗GPT와 언제 어디서든 영어 토론이 가능하고, 원한다면 발음과 문법 오류까지 교정 가능한 시대를 맞았다. 그런데 낡은 문제 유형에 꼬아낸 선택지로 채운 답찾기 실력을 키우려 월 50만 원짜리 영어 학원을 다녀야 하다니. 올 4월 방영된 다큐멘터리(MBC '교실 이데아')서 한국 수능 영어를 풀고 1등급을 못 받은 영어 원어민 옥스퍼드대 대학생의 말이 인상 깊었다. "이런 시험이 제 의사 소통 능력을 측정한다고 보지 않는다." 매력적 오답에 매료될수록, 수능이 평가도구로써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사실 다 아는 건데 안 바뀌고, 하찮은 기술의 고도화만 돼 간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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