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열의 Echo]왜 우리는 '모범택시' 김도기에 열광하나

송정열 디지털뉴스부장 겸 콘텐츠총괄 2024. 6. 20.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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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은 어느 날 동네 한 건물 지하에 '○○의료기'를 판매한다는 '간판도 없는' 영업장이 생기면서다.

그곳에 가면 그 비싼 ○○의료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갖춘 김 과장 등 젊은 직원들의 공연까지 볼 수 있었다.

그 분노와 죄책감이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은 지난해 우연히 TV에서 사적복수대행극을 표방한 드라마 '모범택시2'를 보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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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전쯤 일이다. "나도 하나 사야 할 것 같다. 착한 김 과장한테 너무 미안해서. ○○이 할머니도 지난주에 샀다고 하더라." 퇴근한 아들의 눈치를 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사건의 시작은 어느 날 동네 한 건물 지하에 '○○의료기'를 판매한다는 '간판도 없는' 영업장이 생기면서다. 그곳에 가면 그 비싼 ○○의료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갖춘 김 과장 등 젊은 직원들의 공연까지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집에 돌아갈 땐 두루마리휴지 등 선물까지 안겨주니 그곳은 곧 온 동네 노인의 사랑방이 됐다.

영업의 효과는 강력했다. 어머니는 ○○의료기 전도사가 됐다. "○○의료기는 각종 질병, 심지어 암에도 효과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으셨다. "말도 안 된다"는 아들의 타박에 어머니는 "TV에 나오는 ○○○ 박사도 그러더라.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맞섰다.

어머니의 며칠간 무언시위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200여만원에 구매한 그 ○○의료기는 예상대로 기적의 치료효과는커녕 각종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테이블 역할로 안방 한 구석을 떡하니 차지했다. 그 ○○의료기를 볼 때마다 노인들의 순진한 마음을 악용해 사기를 쳐서 돈을 버는 인간의 사악함에 분노했다.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의 피해를 막지 못한 죄책감도 느껴야 했다.

그 분노와 죄책감이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은 지난해 우연히 TV에서 사적복수대행극을 표방한 드라마 '모범택시2'를 보면서다. 시골노인을 상대로 이른바 효도공연으로 환심을 사서 고물 원적외선 기계를 판매하는 극 중 사기범들의 수법은 어머니가 당한 그 사기와 판박이었다. 사기범들에게 역으로 사기(?)를 쳐서 복수에 성공하는 주인공의 김도기 모습은 답답한 현실에선 맛볼 수 없는 사이다맛 대리만족과 통쾌함을 안겨줬다. 모범택시를 비롯해 '비질란테' '더글로리' 등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가해자를 응징하는 내용의 드라마와 영화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 '정의의 실현인가, 유튜버의 돈벌이인가.' 이달 초 한 유튜버가 '2004년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이름, 나이, 직장 등 신상정보를 연이어 공개하면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무려 44명의 고등학생 가해자가 여중생 한 명을 1년간 집단성폭행한 끔찍한 사건이 20년 만에 재소환됐다. 가해자 중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고 수사기관의 인권침해와 2차 가해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너무나 잘살고 있는 가해자들의 모습에 국민은 분노했고 폭로성 신상털기 영상은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폭로 유튜버의 속마음은 금세 탄로 났다. 조회수 폭발로 이미 수천만 원을 챙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튜버는 피해자의 2차 피해 우려에 "피해자 측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이었다. 피해자(가족)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동의를 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유튜버간 폭로경쟁까지 불붙으면서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 여자친구로 지목하고 다른 유튜버는 피해자와의 통화녹음과 판결문을 공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쯤 되면 피해자 입장에선 정의구현을 빙자해 돈벌이에 혈안이 된 폭로 유튜버들은 또 다른 가해자일 뿐이다. 폭로성 신상털기 등 사적제재가 주는 사이다맛 통쾌함은 일시적이다. 오히려 피해자의 2차 피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사적제재는 공익성이 있더라도 법치주의 국가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서 보듯 형사처벌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숙제는 남는다. 과연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죄를 물었는가에 대한 반성이 출발점이다. '모범택시' 김도기에 대한 현실 속 국민의 갈증은 결국 국민 법감정과 가까이하기에 너무 멀었던 사법체계가 풀어야 할 몫이다. 그래야 국민이 픽션을 픽션으로 즐길 수 있다.


송정열 디지털뉴스부장 겸 콘텐츠총괄 song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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