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박형준의 정치적 위상과 시민 자존심
부산 울산 경남의 ‘부울경’과 대구 경북의 ‘TK’는 국민의힘의 정치적 텃밭이다. 그나마 부울경은 뭐만 꽂아도 당선이 된다는 일방적 지형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보수에게 유리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부울경과 TK 정치세력 간 비교우위는 어떤가.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보수 정치권에서는 부울경은 TK의 아류요, TK가 중심이라면 부울경은 변방이다.
이런 정치적 열세에 민감해서일까, 부울경은 TK에 행정통합 논의마저 밀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극한의 수도권 집중으로 신음하는 대한민국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전범으로 평가받던 부울경 메가시티를 부울경이 스스로 걷어찬 지 2년 만에 대구 경북은 급행 열차를 탄 듯 통합 논의에 속도를 낸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부인하겠지만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아닌 듯하던 부산 경남 행정통합 논의는 TK발 통합 논의에 떠밀리듯 추진된다는 게 여론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유지하려는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메가시티를 이탈한 박완수 경남지사가 대안으로 제시한 게 부산 경남 행정통합이다. 이 과정에서 울산은 경북 포항시, 경주시와 함께 해오름 동맹을 추진하면서 사라졌다.
특히 TK의 일사불란한 속도전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강력한 정치력이 바탕이 됐다. 홍 시장은 특유의 저돌적 정치력을 과시하면서 대구 경북 통합 논의를 주도했다. 압권은 “저야 임기가 2년여 밖에 안 남았지만 경북지사는 6년이나 남았으니깐 통합하면 대구 경북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라선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발언의 적절성 등을 살피기 전에 홍 시장은 부산시민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시장의 화끈한 정치력과 함께 연임이 아닌 시장 이후의 정치적 미래를 분명히 보여줬다. 정치적 미래가 있는 단체장의 추진력은 문재인 정부의 김경수 경남지사가 그러했듯 정부 부처 내에서의 압도적인 파워를 갖는다는 점에서 부럽기만 하다.
그동안 부산시민은 정치적 미래가 있는 강력한 정치인 시장을 갈망했다. 역대 부산시장의 정치적 목표는 재선 내지는 연임이었다. 여야의 경쟁이 실종된 정치구도 속에 연임을 목표로 하는 부산시장에게 정치적 위상과 존재감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부산에서만 위풍당당한 ‘방구석 여포’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렇기에 박형준 시장의 등장은 정치적 호불호, 이념 성향 등을 떠나 화려한 미래가 보인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합리적 보수’를 자임하는 박 시장은 실제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 전임 시장이 추진하던 대형 사업을 이어갔다. 부울경 메가시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박 시장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할 최고의 기제인 가덕도신공항과 부울경 메가시티라는 과제를 오롯이 떠안으면서 부울경은 물론 비수도권을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부울경 메가시티가 무산되면서 박 시장의 정치적 위상도 타격을 입었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2030세계박람회를 부산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더라면, 아니 유치전에서 선전만 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 테지만 박 시장에게 이 같은 기회가 다시 찾아올지는 미지수다.
박 시장의 정치적 위상은 개인의 것이 아닌 부산시민의 것, 나아가 부산시민의 자존심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 위상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하는, 그래서 국민의힘 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역균형발전의 기치를 드는 데서 찾을 수 있고, 찾아야만 한다. 당대의 전략가로 이명박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모델’을 입안한 경험에, 30년 전 시민운동가로서 부울경 통합을 가장 먼저 외쳤던 열정과 호기를 더해야 한다. 가덕도신공항의 온전하고 안전한 개항, 제2 활주로 추가의 목표 달성은 물론 부산경남 행정통합 등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부산시장의 행보는 시민의 자존심과 직결된다.
송진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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