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디자인 가치와 가격
최종 마감이 바로 코앞! 석 달여간의 치열한 고민과 번뇌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 다가온다. 입이 타고 정신이 아득하다. 항상 무엇인가 새로움이라는 지향성을 향해 도전하고 만들어갈 때 ‘내가 왜 이렇게 어렵고도 난해한 길을 가고 있나’라는 자책과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다.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에게도 창조의 고통은 있었으리라.
우리 모두 새로움과 창조에 대한 가치와 필요성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인정을 받기 위해 예술이라는 범주로서 미술, 음악, 행위 등이 만들어지고 행해진다. 예술의 창조에 대한 노력의 가치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가치로 환원돼 창작자에게 지급되고 경제활동과 사회적 지위도 부여받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디자이너들은 창작자이기 이전에 소속된 조직체나 기업의 업무 활동으로서 또는 다른 조직체나 기업 활동을 위한 파트너로서 임무를 부여받고 일을 한다.
하지만 디자인을 전공으로 정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비춰 보면 앞서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하기 위해 디자인을 수행하는 것보다는 다른 가치 있고 새로운 창조의 의미가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는 데 더 큰 동기 부여가 됐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술이 직업인 대다수 사람들은 아마 이 같은 ‘쟁이’나 ‘꾼’에 대한 개념 및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예측해 본다.
며칠 전 A지자체의 연간 광고홍보물의 대행사를 평가하고 우선협상권자를 심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불경기에 제법 큰 예산이 책정된 프로젝트답게 굴지의 메이저 대행사가 참여했고 자신만의 전략과 분석을 토대로 아이디어와 향후 방향성에 대해 디자인 결과물까지 선보이는 자리였다. 물론 최종 협상자로 선정되고 계약을 체결하는 곳은 오직 한 곳뿐이다. 확실한 승자독식의 세계. 2등과 3등은 의미가 없다.
최종 메달을 결정짓는 올림픽 무대에서는 1등이 아니더라도 참여자의 열정, 노력, 과정, 스포츠정신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하나라는 인류애를 부르짖는다. 물론 프로의 세계에서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디자인 분야에서는 언제부턴가 1등이 아닌 그 외의 것들과 내용에 대해서는 패배자로 인식하고 말하기 두려워한다.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2등, 3등, 그 외의 낮은 등수는 진정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필요 없는 것일까.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일을 발주한 기업의 입장에서 정리해 보면 디자인 프로젝트가 아무리 의미 있고 예산이 큰 것이라도 괜찮은 디자인 업체가 참가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로 진행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경쟁이 있어야 모든 참가자가 긴장하고 최고의 결과물을 위해 전략적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방향을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소비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디자인은 사실 정답이 존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모두의 환경과 목적에 따라 세부적인 니즈가 다르고 무엇보다 인간이기에 각자의 감정과 감각이 다르다. 하나의 답이 없는 것이다.
양질의 디자인이 제공되려면 다수가 바탕이 된 경쟁을 토대로 끊임없는 시장연구와 조사, 분석, 전략에 따른 디자인 표현이 따라와야 하며 이와 함께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의 참여와 양심 있는 디자인 수행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무엇보다 결과를 보증할 수 없기 때문에 미친 듯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1등이 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1등이 전부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알고 있다. 치열한 경험을 통해, 통렬한 실패를 통해 디자인의 통찰이 만들어지고 마지막에 성공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따라서 디자인이 필요한 기업이나 조직체, 최종 디자인 결과물을 수용하는 소비자, 디자인을 개발하는 디자인 기업 모두 1등이 아닌 나머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 필자는 제안한다. 멋지고 세상을 변화시킬 디자인,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디자인 결과물을 위해 우리 모두는 1등 이외의 것에도 가치를 따지고 최소한의 가치와 그에 따른 대가를 수여할 수 있도록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를 만들 필요가 있다. 2등이나 3등까지는 공개 디자인 프로젝트 입찰 참가에 대한 디자인 비용이 책정돼 다음 번에 그들이 1등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양분을 주도록 하자.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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