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100세에 선물 보낸 조선, 65세에 복지 뺏을 한국

김종구 주필 2024. 6.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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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오래 살았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었다. 어의가 붙어 건강을 챙겼다. 그런 조선시대 왕의 평균 수명이 46.1세다. 16세에 죽은 단종을 제외해도 47.3세다. 70세를 넘긴 왕은 태조(72세)와 영조(81세)뿐이다. 일반 백성의 수명은 이보다 훨씬 짧다. 19세기 서유럽 사람의 평균 수명이 35세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도 이 정도로 추정된다. 정조 14년(1790년) 70세 이상이 2만5천810명이었다. ‘호구총수’ 속 인구 740만 3천명의 0.34%다.

하물며 100세는 하늘의 축복이었다. 백성의 100세를 임금이 친히 축하했다. 세종이 충청도 남포현 108세 노인을 축하했다. 달(月)마다 술과 고기를 하사해 장수를 빌었다. 영조도 108세 노인에게 옷감 1필과 고기 10근을 내렸다. 조선을 통틀어 최고령자는 동추(同樞) 정이천이다. 111세 때 기록이 있다. 정조가 ‘할아버지 영조 때부터 그가 궁궐에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건강하게 살고 있다’며 많은 물품을 내려 축하했다.

노인 취급은 50세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로 우대 정책이 그때부터 등장한다. 부역에 동원하지 않았다. 예비직인 검직을 제수했다. 자녀가 어려도 혼인을 허락했다. 환갑 60세가 되면 복지가 더 늘었다. 세금을 내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죄를 지어도 속죄금으로 대신하게 해줬다. 쉬운 과거 기로과(耆老科)로 기회를 줬다. 70세에 이르면 치사(致仕)도 할 수 있었다. 쉴 수 있는 퇴임 신청이다. 자녀를 공역에서 면제시켜 공양을 받게 했다.

80세부터는 더 파격적이다. 고을 수령이 연회를 마련해 잔치를 베풀어줬다. 생활 능력이 없는 독거인에게는 생필품을 줬다. 살인죄를 지었어도 사형은 면제해 줬다. 역적죄를 지은 죄인의 부모가 80세를 넘었으면 유배로 끝냈다. 90, 100세에 이르면 살폈듯이 왕이 축하했다. 동방예의지국의 500년 노인 복지 정책이다. 기초생활에 대한 돌봄 정책, 면세 혜택을 통한 노후 연금 정책, 처벌 면제를 통한 사법 특례.... 지금 기준에도 넉넉하다.

2024년 대한민국. 노인 연령이 높아질 것 같다. 복지 혜택 받는 연령이다. 서울시가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현재 65세인데 1981년 노인복지법이 근거다. 그때 기대수명은 66세였다. 지금 82.7세다. 16.7년이나 늘었다. 65세 이상 인구가 연내 1천만명을 돌파한다. 2050년 가면 전 인구의 40%가 된다. 60대도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노인을 70세로 올려 나쁠 게 있나 싶다. 문제는 연령 조정의 목적이다.

돈 안 주려는 거다. 65~70세 400만명이 대상이다. 노인 기초연금이 없어진다. 노인성 질병 지원도 없어진다. 틀니 임플란트 2개 할인도 없어진다. 무료 독감 접종도 없어진다. 전기·가스비 지원도 없어진다. 주민세 혜택도 없어진다. 무료 건강검진도 없어진다. 기차 30% 감면·항공 10% 할인도 없어진다. 대강만 추렸는데 이 정도다. 당사자에겐 당장 생활로 겪게 될 부담이다. 정년하고 5년의 보릿고개가 이제 10년으로 는다는 얘기다.

어른답게 ‘그러라’고 받아들일 마음이 왜 없겠나. 하지만 현실이 안 그렇다. 냉골에서 자고, 끼니 아끼는 노인이 많다. 노인 빈곤율이 39.3%로 OECD 최악이다. 이런 노인들에게 썩은 이빨로 살라는 얘기다. 기차 타지 말고 걸어 다니란 얘기다. 그래서 말하고픈 소망이 정년 연장이다. ‘노인’ 대우 안 할 거면 ‘장년’ 대우라도 해달라고 싶다. 사라진 복지 채울 만큼 근로 기회 좀 달라고 싶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 빼앗는 거 같아 이 말도 못한다.

복지는 절대 뒤로 못 가는 거라던데...이 시대 노인은 이 법칙에도 못 낀다. 100년 산 백성에게 임금이 고기 보내던 나라.... 지금은 65년 산 국민에게서 복지 빼앗을 연구가 한창이다.

김종구 주필 1964kj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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