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단상] 연극이 나를 찾아왔다

김진국 2024. 6.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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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국 시민극단 ‘봄내’ 대표

매년 봄 새 학기는 온통 설렘으로 가득했다.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지난해 달력으로 정성 들여 겉표지를 싸고, 연필도 하나씩 깎아서 가지런히 필통에 쟁여 넣는다. 새 공책과 교과서에 이름을 적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이 모든 의식의 마지막 단계는 잠들기 전 새 가방에 소중하게 담는 일이었다. 개강 첫날 학교에 가면 새 교실에서 새로운 얼굴의 친구들과 서먹하게 앉아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한다. 봄마다 첫 수업을 그렇게 설렘으로 맞이했다.

어른이 되면서 이런 설렘을 갖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데 2022년 새로운 설렘과 만났다. 바로 춘천연극제가 매년 봄 개강하는 문화예술인 육성사업의 연극아카데미였다.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소년 때의 설렘을 다시 찾게 했다. 연극아카데미는 희곡창작반과 연기, 연출, 음악극, 청소년과정, 시민역량강화 등의 교과과정이 있고 매년 한 과정에 20명 이상이 유능한 강사를 만나 20회(주 2회) 정도의 수업을 받는다. 두 달 남짓한 기간 이론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절반은 발표회를 준비해 실제 무대에 서게 된다.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강사진이었다. 강사진 프로필을 본 나는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고 다시 묻어두고 온 사람처럼 심장이 뛰었다. 이런 우수한 강사에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연출가, 연극영화과 교수, 현장에서 활약 중인 연극의 대가들이 강사진이었다. 수강생들에게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춘천연극제의 연중 축제는 크게 3개 파트다. 3월 문화예술인 육성사업과 5∼6월 매주 목요일 지역대표 문화예술 상설공연에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 연극축제가 6월 말부터 10월까지 100일 이상 이어진다. 문화예술육성사업 연극아카데미는 그중 한 축이다.

흔히 예술문화는 창작과 보급과 소비,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춘천연극제는 이 모든 것을 섬세하게 배려한다. 연극아카데미만 보아도 단순 강좌 형태로 하지 않고 무대 참여를 이끌어 이론과 실제를 병행하는 어려운 과제를 기꺼이 엮어나간다. 또 20회차의 강의 후 공연발표회에 그치지 않고 심화과정인 ‘시민역량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 시민이 평생 갖기 어려운 연극 실전경험을 계속 만들어 준다. 한 걸음 더 내디뎌 수강생 위주의 시민극단을 만들고 지원, 실력만 갖춰진다면 젊은이들에게 전문예술인에 대한 도전의 기회를 만들어 주며, 시니어들에게도 연극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연극문화의 단순한 소비에 그치지 않고, 창작과 보급, 저변확대까지 기여하는 것이다. 이같은 확고한 목적성과 차별화된 추진력은 전국의 많은 연극인들에게 주목받고 있으며 다른 시·도의 극단과 단체들이 벤치마킹하려는 까닭이다.

우연히 춘천연극제에서 연극을 만나고 사귀게 된 지 2년이 됐다. 처음에는 내가 연극을 찾아간 줄 알았는데, 마주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연극이 나를 찾아온 것 같다. 내가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다가온 것에 내가 응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미친 짓 하고 있는 것 같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자문한다. 내게 연극, 무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어떤 ‘꿈’이다. 어릴 적 터무니없게도 빈소년합창단에 들어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다른 꿈을 꾸려고 하는 것이다. 전문배우가 되겠다거나 영광스러운 무대에 오르거나 주인공이 되어 환호 받겠다는 그런 꿈이 아니다. 철을 용광로에서 녹이고 틀에 부어 새로운 것을 만들 듯 연극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도전이다. 나를 즐겁게 하는 터무니없는 새로운 꿈이다.

험난한 세상에 내던져진 모든 인생과 같이 내게 다가온 운명적인 연극과의 만남에 맞서 응전하려고 한다. 브레히트는 친구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희곡을 썼다지만 나는 연극을 통해 내 인생 관객인 자식들에게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운명에 맞서는 아비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고 싶다. 그 꿈을 춘천연극제 문화예술인 육성사업 연극아카데미에서 만났다.

해마다 봄이면 갈색 동토를 비집고 나오는 새싹처럼 문화예술인 육성사업 연극아카데미에 수강생이 파릇파릇 모여든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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