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119 벌금제’ 시작한 일본

김동현 기자 2024. 6.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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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미드저니·Midjourney

7090명. 지난달 넷째 주 전국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은 경증 환자 수다. 2월 첫째 주 8285명이었던 이 수치는 이듬달 들어 6000명대 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재차 상승 곡선을 타더니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구급 의료 공백을 옥죄고 있다.

경증 환자는 단순 치통이나 복통, 두드러기, 감기 등 비교적 가벼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말한다. 이들에겐 애석하지만 경증 환자가 119 신고로 응급실에 이송되는 경우가 늘어날수록 일분일초가 생명에 직결된 중증 환자 치료 여건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길게는 수 시간에 달하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부터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들의 업무 부담 가중까지. 전남 등 일부 지역에선 최근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의 평균 시간이 10분을 넘어섰다고 한다. 심정지 등 위급 환자의 ‘골든타임’은 보통 10분 안쪽이다.

119 신고 남용으로 인한 구급 의료 공백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에선 지난해 전국 구급차 출동 건수가 760만건으로 2년 연속 최다였다. ‘집에 벌레가 들어왔다’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등 경증을 넘어 장난 전화에 가까운 신고들이 남발됐다고 한다. 미에현 마쓰자카시에선 2022년 구급 이송된 환자 10명 중 6명이 경증 환자였다. 보다 못한 시 당국은 의료·소방 당국과 협의해 이달부터 위급성이 없는 신고자에게 7700엔(약 7만원)의 ‘벌금’을 걷기로 했다. 이대라로면 ‘구급차는 택시, 응급실은 24시간 편의점’으로 전락할 것이란 의료계 지적에 비난을 감수하고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전공의 집단 파업 문제가 좀처럼 봉합되지 않고, 대형 병원 집단 휴진까지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위급 환자가 119 남용의 피해자가 될지 가늠할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응급실 이용 비용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응급의료 관리료로 5만원 안팎을 징수하지만 실손보험 대상이어서 상당수가 환급받는다. 구급차가 택시로 전락하고 말 거라는 게 허무맹랑한 지적만은 아닌 셈이다.

소방·의료계에선 일본 마쓰자카시처럼 경증 환자에게 별도의 징수금을 물리거나, 최소한 응급 여부를 판단할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1339는 전문 의료진이 증상을 듣고 자가 치료나 내원의 필요성을 판단해주던 상담 전화로 119와 혼동된다며 12년 전 폐지됐다. 응급실에서 경증 환자를 걸러줄 가늠자가 현재 한국엔 없는 것이다.

일본 같은 ‘119 유료화’ 정책은 국민 상당수의 반발을 부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중증 환자의 생사가 고비에 달한 건 우려가 아닌 현실이다. 병(病) 앞에선 모두가 동등하다. 구급 의료 공백의 피해자가 누가 될진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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