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나 여기 살아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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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결혼이민여성 자조모임 계획서를 살펴보다 기가 찼다.
"아니 이게 요리교실 계획서예요? 자조모임 계획서예요?" 분위기 파악이 안 됐는지 지적을 하는데도 화색을 띠며 자랑이 늘어진다.
많은 회원이 조리실을 가득 채웠고 성가신 기색 하나 없이 재게 움직여 면을 뽑고 푸짐하게 량피를 만들었다.
결혼이민여성들의 국가별 자조모임엔 모국 음식 만들기가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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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에 또 자조모임을 하겠단다. 이번엔 단오절이 다가와서 반드시 ‘쭝쯔’를 만들어야 한다나. 기세에 눌려 고분고분 수락했다. 쭝쯔는 찹쌀을 댓잎에 싸서 찌는 댓잎 주먹밥 같은 단순한 결과물인데도 서너 시간 지나도록 완성되지 않았다. 단오절마다 먹긴 했으나 최근에는 마트에서 구매하는 추세라 젊은 사람들은 만드는 게 익숙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 자국에서도 만들어본 일이 없는 것을 타국에 나와서 굳이 만드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결혼이민여성들의 국가별 자조모임엔 모국 음식 만들기가 빠지지 않는다. 더위도 번거로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국으로 갓 시집온 신참도 10년이 넘은 고참도 똑같이 환호하며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는다. 심지어 자국에서는 그냥 사 먹던 음식까지 이제는 만들어 먹겠다고 나선다. 이유가 뭘까?
위로가 필요한 이민자의 생활에 스스로 선사하는 선물인가 보다. 한국 가족과 음식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나에 대한 위로. 서로에 대한 공감과 격려의 잔치. 고향과 가족을 떠나 결혼 이민을 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적의 북돋움인 것 같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조모임을 지켜 보고 있으면 위로와 격려 그 이상의 무엇이 느껴진다. 자부심? 좀 과장하면 우월감? 자기들끼리 조리실에 모여서 식재료를 다듬고 씻고 지지고 볶는 번거로운 작업을 하는 날인데 그 어느 날보다 예쁘게 단장하고 나타난다. 외양뿐 아니다. 혼자일 때 맥을 못 추던 자부심이 함께 모이면 위력을 발휘하는지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풍부해진다.
여름이면 가족과 어울려서 먹고 즐겼던 흐뭇한 기억, 단오절이면 들뜨던 명절 기분. 음식을 만들고 수다를 떨면서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던 기억을 흔들어대서 그런지 저마다 제 빛깔로 돌아오는 것 같다. 원래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그리 가라앉아 있었나 싶다.
량피가 너무 맛있는 이유, 쭝쯔를 꼭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미각의 욕구 때문이 아니다.
나 여기 살아있소. 나 아직 빛나고 있소. 외침이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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