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송은석]최고 난도의 최고 모델, 아이를 셔터로 잡아라
그래서 기자는 퇴근하고 난 뒤에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기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들의 성장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너무 빨리 커 버린다. 엉금엉금 기어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 자녀의 어린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인 걸 알기에, 기억을 담는 그릇인 사진을 통해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매년 가족사진 연감(?)을 책으로 한 권씩 만들고 있다.
기자는 아이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이 강조되는 클로즈업 사진보다는 배경도 함께 담기는 와이드 샷 또는 미디엄 샷을 선호한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집인 고(故) 전몽각 교수의 ‘윤미네 집’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 교수가 약 26년 동안 세 자녀의 성장 과정을 카메라로 담은 사진집에서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 못난이 인형, 비포장도로 등 1960, 70년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사진이라는 사적 영역이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공적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런데 찍으면 찍을수록 아이 사진은 정말 어렵다고 느낀다. 국회, 스포츠, 인터뷰, 재난 등 다양한 사진을 촬영해 봤지만 아이를 찍는 게 가장 힘들다.
일단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움직임이 예측 불가능한 데다 너무 빨라서 카메라 피사체 추적 기능을 켰는데도 초점을 못 잡을 때가 많다. 아이들을 흔들리지 않게 찍기 위해 셔터 속도를 500분의 1초 이상으로 두곤 한다. 휙휙 빠르게 바뀌는 아이들의 감정 변화도 문제다. 아이들은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기 때문에 순간을 포착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해 무릎을 꿇는 건 기본이고 필요하면 엎드리기도 한다. 이런 내 수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막 걸음마를 뗀 둘째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방실방실 웃으며 기자를 향해 돌진해 온다. 최근엔 여의도 물빛광장에 누워 있는 첫째를 찍기 위해 허리를 숙이다 삐끗해 등에 파스를 붙이고 있다.
둘째가 어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실내에 빛이 부족한 상황도 아쉽다. 그래서 일부러 창가 쪽으로 둘째를 유인해 사진을 촬영하곤 한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질감이 부드러울뿐더러 적절한 입체감을 주기 때문에 인물 사진에 유리하다.
정리되지 않은 환경도 방해가 된다. 아이가 놀다가 방치한 책과 장난감, 기자가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양말, 바닥에 굴러다니는 휴지와 기저귀.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지만 정도가 있다. 카메라를 들려다가 급하게 청소기를 잡기 일쑤다.
이런 악조건이 많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찍는 것은 즐겁다. 그들의 천진난만함은 때때로 어떤 배우나 감독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사진관에 전시된 가족사진에선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정형화된 구도의 스튜디오 사진은 각 구성원의 개성을 담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기자는 되도록 일상의 순간을 담으려 노력한다. 둘째가 예방주사를 맞고 엄마 품에 안겨 울 때도, 첫째가 숙제하기 싫다며 뾰로통해 있을 때도 기자는 카메라를 든다.
수년 뒤 자녀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학생 시절 기자가 그랬듯 가족 간의 대화도 줄어들 것이다. 아이를 차로 학원에 바래다주는 게 함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정적인 사진이 늘어나고 125분의 1초, 60분의 1초…셔터 속도도 낮추게 될 것이다.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던 아이들이 웃는 얼굴보다 공부하는 뒷모습을 더 보여줄 것 같다. 그때는 다른 의미로 아이들을 찍는 건 역시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도 ‘작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송은석 사진부 기자 silver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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