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호캉스… ‘회전또어’ 달린 5층 호텔서 ‘은칼’로 양식 조식[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당시 소설에 “몽상-동화 같은 세계”… “사치의 실험실 같다” 문화적 충격
호텔 장미정원은 非투숙객에도 개방… 공연-활동사진 보던 데이트 코스로
《1914년 준공된 호화 ‘조선철도호텔’
1936년 11월 6일 개봉한 영화 ‘미몽(迷夢)’은 현재 영상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어 유성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애순은 남편과 어린 딸이 있는 주부로서 가정에 충실할 것을 강요하는 남편에게 반발하여 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만난 (신사로 가장한) 건달 창건과 동거한다. 마침내 건달의 정체를 알아챈 애순은 그를 버리고 자기가 스타로 추앙하는 무용가를 따라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무리하게 과속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그런데 하필 택시에 치인 사람은 그녀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미몽(헛된 꿈)’에서 깨어난 애순이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살한다는 신파적인 스토리이다.》
한국 철도의 역사는 1899년 경인선이 개통하면서 시작되었다. 경인선은 처음 미국인 사업가 제임스 모스가 사업권을 따내 부설을 시작했지만 자금난으로 일본 쪽에서 자본을 투자한 경인철도회사가 준공했다. 이후 한반도의 주요 철도는 일제의 침략과 궤를 같이하여 부설되었다. 1904∼1906년 러일전쟁에 출정하는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일본군은 부산에서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부선, 경의선을 개통했다. 병합 이후에는 호남선과 경원선이 잇달아 개통했다(1914년). 1928년 경원선을 연장한 함경선(원산∼함경북도 회령)까지 개통하면서 한반도를 ×자로 꿰뚫는 철도망이 완성되었다.
간선 철도망이 완성되어 가면서 철도를 운영하는 총독부 철도국은 수익 사업을 겸해 일본이나 서양의 고위층 혹은 재력 있는 여행객이 이용할 만한 고급 숙박 시설의 건립을 계획했다. 철도는 여행을 낳고, 여행은 호텔을 낳은 셈이랄까? 1912년에는 부산역 구내에 부산철도호텔이 최초로 개관했다. 1914년에는 경의선 종착역인 신의주에, 1922년에는 평양에도 철도호텔이 잇달아 개관했다.
경성의 철도호텔도 1912년경 신축을 결정했다. 위치는 소공동의 대관정(大觀亭) 맞은편으로 결정했다. 기차역과 경성 핵심부의 중간쯤 되면서 일본인 중심지인 남촌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대관정은 원래 선교사 주택으로 지은 것으로 대한제국 정부가 매입하여 영빈관으로 사용한 서양식 건물인데 러일전쟁기에는 일본군이 사령부로 사용했다. 이 무렵부터 소공동은 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후일 2대 조선 총독)의 이름을 따 장곡천정(長谷川町)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호텔 건립을 예정한 대관정 맞은편에는 대한제국이 건립한 환구단(圜丘壇)이 있었다.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건립한 시설이다. 총독부 철도국은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호텔에도 서민에게 개방된 공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장미 정원’을 들 수 있다. 조선호텔의 명소 중 하나인 장미 정원은 1918년 조성되었다. 1901년 대한제국과 수교한 벨기에 영사관이 문을 닫을 때, 그 뜰의 장미를 인수한 것이라고 한다. 장미 정원은 1924년부터는 호텔 투숙객이 아닌 일반에도 개방되었다. 이 공간은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1942년)에 등장한다. “은주 어머니는 송빈이와 은주더러 활동사진 구경이나 갔다오라 하였다. 송빈이는 우미관으로 갈까 단성사로 갈까 하는 은주를 데리고 조선호텔로 온 것이다. 전에 윤수 아저씨를 따라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로오즈 가아든’으로였다. 호텔 후원에는 여러 가지 장미가 밭으로 피었는데, 50전만 내고 들어오면 꽃구경은 물론이요 악대의 음악연주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나중에는 활동사진으로 금강산 구경까지 하는 것이었다.” 소설의 묘사와 같이 조선호텔 장미 정원은 당시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성의 데이트 코스 중 한 곳이었다. 호텔에 투숙하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는 가난한 연인이 조선호텔이라는 ‘동화의 세계’의 맛이라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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