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고립’ 북·러, 국제사회 입지 강화… 자체 무역·결제 시스템 구축 시도할 듯 [북·러 정상회담]

서필웅 2024. 6. 1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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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체결 배경·향후 전망
푸틴 “서방 패권유지 목적 제재 맞설 것”
김정은 “두 나라 진보 훌륭한 궤도 올라”
두만강 국경 다리 건설해 육상 운송 확대
北 ‘외화벌이 노동자’ 파견 러 확대 관측

북핵 개발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동병상련 처지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로 풀이할 수 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꾀하는 ‘다극화 세계’의 중요 파트너이자 어엿한 일원으로 북한을 끌어들이고, 북한도 핵 개발에 따른 ‘왕따’에서 벗어나 국제사회 입지를 강화하겠단 심산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새벽 북한 평양에 도착해 국빈 방문을 시작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19일 정상회담 이후 연 공동 언론발표에서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와 북한에는 독립적인 외교 정책이 있으며 협박과 강요의 말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서방이 정치, 경제 패권 유지를 목적으로 늘려온 수단인 제재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주도한 무기한 대북 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한·미·일 군사훈련에 대해 “이는 한국 및 일본, 그리고 북한에 적대적인 병력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군사 훈련의 규모와 강도를 크게 높임으로써 지역내 군사 기반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대립적 정책”이라며 “동북아 역내 전체의 안보를 위협할 뿐 아니라 평화와 안정성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는 오늘 서명한 조약과 연계해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무기 거래 등을 포함한 군사 협력에 방점이 찍힌 발언으로 보이지만 경제·무역과 우주, 에너지 등 북한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수 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 가능성도 읽을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새벽 평양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접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 위원장도 “두 나라 관계는 정치와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호상협력 확대로서 두 나라의 진보와 인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보다 훌륭한 전망적 궤도에 올라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의도는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열린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확대 정상회담 명단에서도 감지된다.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6명이 참여한 북한 측에 비해 러시아 측 대표들은 13명으로 인원수가 북한 측의 두 배 이상이고 외교, 군사뿐 아니라 에너지, 교통, 철도, 우주, 보건 등 분야 수장이 참석했다.

이중 양국 무역과 관련해서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숫자가 변변치 않다”면서 “그러나 좋은 성장의 동력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북한과 더 많은 경제 협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날 조약에 포함된 두만강 국경도로 다리 건설도 이 일환이다. 양국 국경을 가르는 두만강을 자동차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겠다는 내용으로 해상 운송에 치중했던 거래를 육상으로 넓혀가겠다는 의도다. 수월한 인력 교류를 통해 북한이 대표적 외화벌이 수단인 해외 노동자 파견을 러시아 지역으로까지 확대할 가능성도 커졌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청년층 이탈이 심각해지면서 노동력 확보가 시급하다. 두만강 자동차 도로 건설을 계기로 북한 노동자 수급을 더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공식 환영식을 마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AP뉴시스
아울러 러시아와 북한은 이번 조약 체결을 계기로 자체적인 무역·결제 시스템 구축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은 평양 도착 전 북한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금융제재를 무력화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제재와 감시 대상인 달러화를 대신해 루블화 거래를 확대해 루블화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러시아의 야심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약에는 과학과 의료, 교육 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 내용도 포함됐다. 과학 분야는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의 방러 당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수 있다고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만큼 러시아의 기술 이전이 한층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필웅·조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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