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초밀착, ‘동맹’엔 온도차…자동군사개입 부활은 불확실

이제훈 기자 2024. 6. 1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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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관계 새 법적 문서 ‘협정문’ 전문 안갯속
2000년 신조약도 미공개…‘동맹’ 표현 북-러 인식 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북한 평양 금수산궁 영빈관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식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평양/AP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오후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진행한 양자 정상회담에서 ‘반미 연대’를 동력으로 “다극화된 새 세계 질서”를 지향하는 북·러의 “장기 관계 구축”을 다짐했다. 푸틴 대통령의 24년 만의 방북을 계기로 북-러 관계를 재설정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협정)이 그것이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재설정한 새로운 북-러 관계의 내실이 어떤지는 아직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북-러 관계의 새로운 법적 기반 문서 구실을 할 ‘협정’의 전문이 즉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4시간 가까운 회담 뒤 공동 언론 발표에서 이 협정에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 조항이 포함됐다”고 발표한 데 비춰, 북·러 밀착은 더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푸틴 대통령은 “한·미·일 군사훈련 확대는 지역안보를 위협하고 평화를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새 협정은 “평화적, 방어적”이라고 주장했다.

관건은 ‘상호 지원’의 구체적 조건과 내용이다. 이번 ‘협정’ 서명 이전에 양국 관계의 법적 기반 문서 구실을 해온, 2000년 2월19일 맺은 ‘친선·선린·협조 조약’(신조약)도 새 협정처럼 아직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다. 북·러 양국은 푸틴 대통령의 2000년 7월19일 첫 방북 때 채택한 ‘조로공동선언’ 2조에서 “협의와 호상(상호) 협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지체 없이 서로 접촉”을 약속했다. 반면 냉전기인 1961년 7월6일 체결한 ‘우호·협조·호상원조 조약’(구조약)은 조약 상대방이 침략을 당하거나 그럴 위험에 처했을 때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군사적 자동개입)를 1조에 명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낮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평양/로이터 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공동 언론 발표 때 북-러가 “동맹 관계에 올라섰다”며 “위대한 조로 동맹 관계는 오늘 이 자리에서 비로소 역사의 닻을 올리며 출항을 알렸다”고 거듭 강조한 것으로 미뤄 보면 새 협정의 지향은 2000년 신조약보다 1961년 ‘동맹’ 조약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달리 푸틴 대통령이 공동 언론 발표 내내 단 한번도 “동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사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러시아와의 초밀착 수준을 과시하려는 북한과, 한국·중국 등 동북아 주변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려는 러시아의 인식 차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상호 지원’에 법적 구속력을 지닌 ‘자동개입’ 의무가 있는지다. 같은 ‘상호 지원’이라도 자동개입 의무가 있냐 없냐의 차이는 현격하다. 예컨대 한-미 동맹 조약에는 자동개입 의무가 없고, 북-중 조약엔 자동개입 의무 조항이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3조에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명시해 ‘자동개입’ 의무를 배제했다. ‘헌법상의 수속’이란 미군이 한국을 도와 전쟁 행위를 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1961년 7월11일 체결된 북-중 ‘우호·협조·호상원조 조약’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문구로 ‘자동개입 의무’를 적시했다.

국가정보원·청와대에서 오래 일한 전직 정부 핵심 관계자는 “외신 보도만으론 북-러 새 협정이 1961년 ‘동맹’ 조약보다 2000년 신조약에 가까워 보이는데, 확실한 건 전문을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도 “상호 지원이 곧바로 자동개입 조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김정은은 수차례 강력한 동맹을 강조했지만, 푸틴이 동맹이라는 말은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만약 북-러 새 협정에 ‘자동개입 조항’이 명시됐다면 이는 1990년 9월30일 한-소련 수교 이후 30년 넘게 축적돼온 남·북·러 3국 관계를 뿌리부터 흔들 위험이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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