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러 관계, 옛 소련 혈맹수준 격상…군사개입 여지 남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양국 협정에 포함됐다고 밝히자 이렇게 강조했다. 양국은 공식적으론 러시아의 대외 관계 가운데 동맹 아래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번 협정으로 북-러 관계가 냉전 시대인 1961년 북한과 옛 소련 간 조약으로 맺어졌다가 28년 전인 1996년 폐기된 양국 간 혈맹 수준으로 격상됐다고 김 위원장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침략 시 상호 원조’ 조항으로 양국이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상호 파병 길을 열어놓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러 군사협력을 명문화한 것으로 향후 이번 협정을 바탕으로 1961년의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으로 발전할 여지를 남겨준 것은 명확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밀착된 북-러 관계가 한반도·동북아는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 국제안보에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는 등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김정은 “조약상 의무에 언제나 충실할 것”
푸틴 대통령이 이날 밝힌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협정 4조)는 과거 1961년 북한과 옛 소련의 동맹조약에 담긴 “쌍방 중 한 곳이 무력 침공당해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항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체 없이” “군사 원조”라는 표현은 없지만 침략당했을 때 상호 원조 군사 지원을 전제로 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소련 해체 뒤 폐기된 자동군사개입 조항은 2000년 북-러가 맺은 우호조약에서도 빠졌다. 당시 이 조약엔 “(유사시) 지체 없이 서로 접촉할 용의를 표시한다”는 조항만 담겼다. 정부 소식통은 “확실히 이번 협정을 계기로 ‘준동맹’ 이상 수준으로 북-러 관계가 격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북-러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불패의 동맹 관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의 전 행정에서 조약상 의무에 언제나 충실할 것”이라며 ‘침략 시 상호 지원’이 문서상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이뤄질 것임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소련 시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조기를 맞았다”고 평가한 것도 러시아의 ‘군사 지원’을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동맹’이라는 표현만 3차례 언급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동맹’ 표현은 직접 하지 않아 김 위원장과 온도차도 드러냈다.
단순 비교는 어려우나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 시 미국의 핵전력으로 즉각 대응하는 확장억제(핵우산)처럼 북한이 핵무기를 포함한 첨단 군사전력을 보유한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 파병이나 무기 지원 등 군사 개입 길을 텄다는 점에서 한국 안보에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양국은 이번 조약 체결로 북한군의 대러 무기 지원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적으로 북한군이 동원될 가능성까지 열어뒀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자국이 제공한 무기 일부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가운데 러시아는 전술핵무기 훈련 등으로 맞대응에 나서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본토에 대한 서방의 공격을 침략으로 보고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길을 열 수도 있다는 것. 향후 북-러가 연합군사훈련 수순을 밟아 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2시간 반 밀담에서 러 군사기술 이전 논의 가능성
이날 양 정상은 금수산 영빈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가진 뒤 통역관만 배석시킨 채 단독 회담을 진행했다. 당초 한 시간으로 예정된 회담은 두 시간 반 동안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크렘린궁이 이 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들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예고한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용 북한 포탄 제공 확대는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이나 전략핵추진잠수함 등 ‘게임체인저’급 러시아 군사기술 전수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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