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정책 덧대기…노동시간 단축 등 근본 해결책은 빠져”
노동시장·청년 문제 못 풀고, 육아휴직 방법에 국한해 접근
“제도를 쓸 수 있는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사람만 혜택 볼 것”
정부가 19일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보면 정부는 저출생 문제에 위기감이 크다. 현재의 저출생 상황을 ‘인구 국가비상사태’라고 선언하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보고서에 “국가 존망이 걸려 있다는 비상한 각오로 가용한 범국가적 역량을 결집하여 총력 대응”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을 두고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키기에는 부족한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장시간 노동이나 수도권 일자리 집중으로 인한 청년세대 경쟁 등 저출생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피해가면서 기존의 돌봄 지원책들을 강화했다는 지적이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은 장시간 노동, 일자리 불안정성이다”라며 “이번 대책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정책이라고 할 수 없지만, 왜 일·가정 양립이 잘 안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과 대책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저고위에서 제시한 일·가정 양립 대책은 출산 직후 집중육아기에 사용할 수 있는 단기 돌봄 제도들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윤 교수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보니까 노동 강도가 세고, 그로 인해 여유 인력이 없어서 육아휴직도 못 가고 대체 인력이 업무를 대체해주기도 어려워서 문제가 발생한다”며 “장시간 노동문제는 그대로 두고 단기 제도로만 해결하려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단 일자리에 진입하기가 어렵고 고용이 되더라도 2주짜리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일자리 양극화 등 노동시간 이중구조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이번 정책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져서 이 제도를 쓸 수 있는 사람들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표준’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당장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부부들에게는 희망이 되는 대책이지만, 결혼이나 출산을 망설이는 청년들의 마음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는 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신 교수는 “지금의 청년들은 내 삶이 힘들어서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는데,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일터의 경직성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시도 없이 정부는 여전히 출산과 초기 양육비에 대한 지원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저출생 정책에 ‘성평등’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빠져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남성의 육아휴직률을 50%까지 높이겠다고 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킬지에 대한 것이 빠져 있다”며 “확대된 일·가정 양립 제도들을 주로 여성이 쓰게 되면, 결국 여성이 조직 안에서 2차적인 노동자로 지위가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청년들의 지방 정착과 지역균형 발전책을 빼놓고 복지제도에만 집중해서는 저출생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수도권에 괜찮은 직장이 다 몰려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 구조를 내버려두고 정부는 늘 복지제도만으로 해결을 하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저고위에서 정책 수요 조사를 위해서 하는 실태조사는 늘 일·가정 양립 제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며 “그렇게 해서는 정책을 만들어내는 관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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