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착에 동북아 지역 ‘안보 딜레마’ 심화 우려
북한과 러시아가 19일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면서 양측이 침략 당하면 상호 군사지원을 하는 내용이 담겨 역내 정세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북·러가 군사협력을 한층 끌어올리면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러 밀착 강화의 대응 차원에서 한·미·일이 군사협력 수위를 더욱 고도화할 수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안보 딜레마’가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는 북·러가 공격을 받으면 상호 지원을 제공할 것을 규정했다. 기존 2000년 2월에 체결한 조약에 담긴 유사시 ‘즉각 접촉한다’는 내용보다 격상된 것이다. ‘지체 없이’이나 ‘군사지원’이라는 표현이 없어 표면적으론 ‘자동 군사개입’보다 낮은 수준으로 보인다. 다만 양측 정상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유사시 군사개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맹 수준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북·러의 안보협력 강화는 한·미·일 협력 고도화의 빌미가 될 수 있다. 한·미·일은 이르면 이달 내 첫 다영역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한·미·일 정상은 오는 7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3자 회담을 할 수 있는데, 북·러 밀착에 따른 강경 대응책이 논의될 수도 있다. 3국 연합훈련의 빈도와 수준을 높이는 식의 방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도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지를 업고 보다 강한 수위의 군사행동 등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북·러가 해상 등에서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면담하며 연합군사훈련을 제안한 것으로 한국 정보 당국은 파악한 바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를 지속 추진해도 마땅히 제동을 걸 수단도 없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이날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개정돼야 한다”고 언급한 만큼, 향후에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대북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하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의 활동 연장 안을 두고 지난 3월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러시아는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전략적 안정이 파괴된다고 보는 것 같다”라며 “이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일종의 재균형을 이루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제 교수는 이어 “북·러 밀착을 안보 위협으로 보는 한·미·일이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동북아에서 안보 딜레마가 더 심해질 수 있다”라며 “그러면 군비 경쟁을 촉발하게 되고, 이런 경쟁을 감당할 수 없는 쪽에서 선제 공격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북·러가 조약에 따라 군사협력을 강화함에 따라 당장은 아니더라도,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기술 등을 이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과 핵추진잠수함 기술 등이다. 또 북한이 공을 들이고 있는 군사정찰위성발사 기술 협력도 거론된다. 한국 등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칠 수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종 제재 등을 가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갈등도 격화될 수 있다. 특히 이번 북·러의 조약에 따라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군수물자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제사회에서 북·러의 위상은 더 떨어지고 고립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러시아가 소위 반미 진영에 해당하는 국가들과 추가로 조약을 체결하는 등 러시아 중심의 국방생태계 구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안보 딜레마 심화를 막기 위해 북한 등 주변국과 대화 및 신뢰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 교수는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화의 문을 열어 신뢰를 쌓고 군비 감축 등을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 기조 아래 북한과의 대화는 단절된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는 최근 남북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전면 중지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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