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상 뛰어넘는 북·러 밀착, 고차원 접근 필요한 한국 외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 서명했다. 이 문서는 2000년 북·러 친선·선린 협조 조약을 대체하게 된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를 “가장 정직한 친구이자 전우”라고 칭하며 이번 조약으로 북·러관계가 “동맹 수준으로 격상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조약에는 ‘유사시 상호 지원’ 조항이 담겨 냉전 때로 돌아간 것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후 “이번 조약에는 어느 일방이 공격받을 경우 상호 지원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00년 조약의 ‘즉각 접촉 의무’보다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그것이 1961년 북·러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 조약의 ‘자동 군사개입’ 조항과 같은지는 분명치 않다. 이미 진행 중인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양국이 새 조약을 토대로 군사협력을 심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제도화한 것은 향후 동북아와 세계 정세에 파장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대북제재에 동참하며 한반도 비핵화에 협력했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북한은 자체 방어 능력을 강화하고 국가 안보를 보장하며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며 “무기한 대북 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핵무장을 용인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탈냉전 후 30여년 동안 순탄한 한·러관계를 일궜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지금 상황은 개탄스럽다. 북·러의 위험한 선택에 유감을 표한다. 다만 객관적으로 이것이 러시아와 북한의 ‘사악한’ 행동만으로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냉전 해체 후에도 한반도 분단이 유지된 상황에서 미국과 중·러 사이의 신냉전 구도가 형성됐고, 북한이 이 기회를 포착했으며,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가 북·러 밀착의 빌미를 주는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핵무기 관련 기술 등 북한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기로 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한·러 소통 등을 통해 사후 검증과 평가가 필요하다. 정부는 현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되, 그 대응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지금 상황을 초래한 것이 복합적이라면 대응도 단순할 수 없다. 한·미 동맹을 대응의 중심축으로 삼되, 북·러 결속에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는 등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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