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억압된 감정, 백인들은 몰라…차별에 맞선 싸움 계속할 이유”[2024 경향포럼]
캐시 박 홍 UC버클리대 교수
이민자 2세로서 겪어온 양가감정·자기혐오·트라우마를 ‘소수적 감정’으로 명명
권력자, 소수자 희생양 삼아 당면 문제들 모면…트럼프 당선이 미국 내 ‘파시즘’ 가능케 해
노동시장 불평등이 저출생 원인 중 하나이듯 ‘차별은 다차원 싸움’…열린 마음 가진 젊은 세대들이 희망
어떤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어느새 소수자를 에워싼다. 소수자는 차별의 시선을 스스로 내면화하기에 이른다. 모욕에 가까운 차별을 당해도 피해망상은 아닐까 자기검열하는 식이다. 섣불리 부당하다고 말했다가는 혐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결코 사소할 수 없는 소수자의 감정을 캐시 박 홍 UC버클리대 교수는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소수적 감정)’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계 이민 2세대인 박 홍 교수는 시인으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친다. 부모는 196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시아인에게 ‘모범 소수자’란 딱지가 붙을 때였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빈곤하지 않은, 근면하고 우등한 소수자란 뜻이다. 일종의 환상이자 차별 어린 꼬리표였다. 박 홍 교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종종 자신이 이방인 같았다. 이민자로서 겪어온 상반된 감정과 자기혐오, 트라우마를 샅샅이 담아 2020년 첫 자전적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를 펴냈다.
박 홍 교수는 차별에 맞서기 위해 세상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마이너 필링스’란 용어를 고안해가며 아시아계 미국인의 억압된 감정을 촘촘히 묘사한 이유다. 차별 가득한 세상이 뒷걸음치고 있지만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시민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차별에 항의하고, 정치에 참여한다면 말이다.
박 홍 교수는 오는 26일 <2024 경향포럼>에서 ‘무엇이 분열을 만드는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지난달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박 홍 교수를 만났다.
- <마이너 필링스>에서 소수자들은 ‘연성 판옵티콘(원형감옥)’에 산다고 했다.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소수자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미국에서 소수자들이 연대해 차별에 대항한 사례가 있나.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가 급증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그동안 인종적 정체성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겨왔지만 직접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면서 정체성 문제를 자각하게 됐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연대하는 거대한 움직임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혐오 반대 시위에 나서며 다른 유색인종과 연대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아시아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연대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많이 벌어진다. 학생들이 단순히 전쟁 중단만을 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은 개인적으로도 연결고리가 있다고 느껴서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애착을 가지는 것 같다. 크게 보면 탈식민지화 활동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 소수자만 느끼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마이너 필링스’라고 명명했다. 이런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면 “너무 지나치다” 같은 핀잔이 돌아오는 일도 빈번하다. 그럼에도 소수자로서 마이너 필링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야 할까.
“책 <마이너 필링스>는 이 나라(미국)에서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세상을 향해 거는 일종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백인들은 읽어낼 수 없는 범위의 감정을 묘사하려 ‘마이너 필링스’를 썼다. 그들이 유색인종이 겪는 현실을 경험하지 못하기에 미처 알 수 없는 감정이 있다. ‘마이너 필링스’라는 표현은 우리(아시아계 미국인들)만 느끼는 억압된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애쓴 결과물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내면을 구체적이고 미묘한 부분까지 묘사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는 일은 작가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이 (우리의 내면을) 쉽게 외면하지 않고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사라진 자리에 차별과 혐오가 자리 잡은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에서는 파시즘이 부상하고 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명백한 계기였다. 인종차별은 미국에 뿌리내리고 있긴 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혐오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파시즘의 부상은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정치적 선동이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본다. 자본주의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상위 1%와 나머지 99% 사이 소득 격차 문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불법체류 이민자나 성소수자, 무슬림, 아시안들을 그들이 당면한 문제의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다. 일련의 상황은 허위 정보가 유입되면서 파편적으로 전해지는 뉴스로 인해 더 악화한다.”
-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백래시가 늘고 있다고 들었다. 백래시에 대항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있다면.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백래시 현상에) 항의하고, 정치에도 참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표가 중요하다.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금지법 같은 심각한 백래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수준에서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만연한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관심이 있다. 유색인종, 성소수자 같은 소외된 이들과 백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열처럼 한국에선 여성과 남성 사이 분열이 있는 것 같다. 둘 사이엔 유사한 지점이 있다고 본다.”
- 법으로 강제한다면 차별을 없애는 데 효과가 있을까.
“차별 문제는 다차원적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분명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은 필수다. 그렇다고 거기에서 멈춰선 안 된다. 실생활의 문제이자 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해서다. 예컨대 한국 노동시장에선 여성과 남성 사이 불평등이 존재한다. 저출생의 이유이기도 하다. 점점 더 아이를 낳는 여성이 적어지고 있지 않나. 만약 보육정책을 만들거나 육아급여·출산휴가를 준다 해도 남성이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면 문제 아닌가. 단지 정치적 혹은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 사회는 느리더라도 조금씩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차별과 혐오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보는가.
“나 역시 여전히 역사의 일부로 속해 있기에 뭐라 말하기 참 어렵다. 세상이 어떻게 나아갈지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렇지만 UC버클리대에서 많은 젊은이를 만나다 보니 느끼는 건데 항상 그들이 희망을 준다. 그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똑똑하며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편견을 갖는 대신 공감 능력이 뛰어난 데다 열정적이기도 하다. 솔직히 베이비붐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는 이기적이어서 실망하는 일이 많았다. 예컨대 기후위기 문제만 봐도 그렇다. 젊은 세대는 미래를 근시안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해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반면 기성세대, 특히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싶어 한다. 젊은 세대가 어떻게 하면 사회를 뿌리째 바꿔놓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런 지점에서 나는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하루빨리 젊은 세대가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솔직히 70~80대인 트럼프와 바이든의 선거는 지긋지긋하다. 베이비붐 기성세대가 이 나라를 이끈 지도 너무 오래됐다.”
- 최근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이 크게 늘면서 차별이 심해지고 있는데.
“한국이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단일한 민족의 유교 국가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점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고수한다면 미래로 나아가긴커녕 과거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경제나 출생률 같은 문제에서 말이다. 한국 사회는 이민자들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민자들이 있어야 보다 풍족하며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통계적으로 보면 더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있는 도시일수록 더 많은 기회가 열려 있고 문화적으로 풍요롭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 구조적 차별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존재했을 것이다.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보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불가능할 것 같다(웃음).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차별이 아예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엉망인 경우가 많고 차별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투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더 다정하고, 더 진보적이고, 더 열린 마음을 가진 세대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버클리 | 김희진 ·이창준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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