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 마음의 허기까지 채운 그가 떠났다
유희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 별세
30년 가까이 길 위에서 투쟁하는 약자들에게 밥을 건네며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 유희씨가 별세했다. 향년 65세.
유씨는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1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유씨의 세 아들과 오래전부터 요양원 봉사를 비롯해 ‘밥 연대’를 함께해온 김기수씨가 곁을 지켰다.
1988년 서울 청계천에서 공구 노점을 하던 유씨는 폭력을 동원한 단속에 맞서 싸우면서 노점상 투쟁과 빈민운동에 발을 내디뎠다. 전국노점상총연합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유씨는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씨가 노점 단속에 반발해 분신한 1995년부터 집회 현장에서 밥을 짓기 시작했다. 최씨의 유언을 직접 들었다는 유씨는 최씨를 애도하며 항의 집회를 연 장애인들을 위해 국밥을 끓였다.
이후 유씨는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집밥을 실어 날랐다. 언론에 보도된 고공농성장 중 유씨가 가지 않은 현장이 없을 정도였다. 쌍용차·콜트콜텍·동양시멘트·세종호텔 등 수많은 비정규직·해고노동자 투쟁 현장을 찾아갔다. 노동자·빈민·장애인·참사 유가족 등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밥의 온기를 전했다.
2016년 활동가와 시민들이 힘을 모아 푸드트럭 ‘밥묵차’를 마련했다. 유씨는 밥묵차를 타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밥 연대를 이어갔다. 2017년 세월호 가족이 있는 팽목항을 찾았고, 2018년 ‘비정규직이제그만’ 4박5일 투쟁 현장에서 밥 나눔을 했다. 2021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해고 반대 투쟁에는 16번이나 갔다. 매년 장애인차별철폐의날에는 500명이 먹을 밥을 날랐다.
유씨의 밥 연대는 투쟁 현장의 후방을 지키는 지원군이었다. 명숙 인권운동가는 “유희님의 밥 연대는 본인이 빛나는 운동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방을 데워주는 일이었다”며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싸울 때 곁에서 온기를 계속 지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유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19일 유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약자 편에서 평생 투쟁의 삶을 살아오신 언니, 애쓰셨습니다” “이 세상에 귀한 뜻과 밥의 온기를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등의 애도글이 줄 이었다.
유씨가 생전 당부한 자신의 묘비명은 ‘밥은 하늘이다’였다. 유씨는 평소 “밥을 나눌 때 사랑이 생기고 힘이 생기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민주동지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1일 오전 8시,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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