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유엔 대북제재 개정해야" … 두만강엔 자동차대교 건설
한·미·일·나토 노골적 견제
불법 무기거래 정당화 노림수
金 "새 협정은 평화적" 강변
푸틴, 무기수출 김정은 편들기
나진-하산철도·에너지도 논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평양에서 회담을 열고 '반미(反美) 연대'를 공고히 했다. 특히 미국과 서방의 대북·대러 제재와 압박에 대해 날을 세웠다. 북·러가 정상회담을 통해 이 같은 대결 의지를 다지면서 한반도와 세계 안보 질서에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도 유엔 대북 제재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이날 타스통신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북·러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통해 전방위적 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이 협정은 1961년과 2000년의 조약, 2000년·2001년 각각 평양과 모스크바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이후 나온 공동선언 등을 대체하게 된다. 러시아가 같은 수준의 협정을 맺은 나라로는 베트남, 이집트, 몽골 등이 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회담에서) 서명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양국 중 한 곳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격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다만 이번 협정에 대해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성격"이라고 선을 그은 뒤 "북한과의 획기적 협정으로 양국 관계는 '새로운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도 회담 이후 "새 협정 체결은 역사적인 일"이라며 "조·러(북·러) 관계가 동맹 수준으로 격상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북·러 간 새 협정이 평화적·방어적 성격이라고 강변했다. 이어 이번 협정이 새로운 '다극화 세계' 구축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러시아와 반미 연대를 강화해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 균열을 내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북·러는 이날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포함된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 조항'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내용은 맥락상 북·러가 1961년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에는 넣었다가 2000년 '우호·선린·협조 조약'에서 삭제했던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대체하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해당 조항이 '한미동맹'과 같은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두 정상의 발표 내용만으로는 과거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의 부활인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 북·러는 새 협정에 이러한 내용을 담아 양국 간 군사·안보협력이 새로운 단계에 올랐음을 강하게 시사하면서도 나름의 전략적 모호성을 보였다. 이를 통해 양국에 가장 현실적인 위협인 한·미·일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동시에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도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이후 언론 발표에서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고정밀·장거리 무기체계와 F-16 전투기 등을 제공한 점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북·러는 이러한 조항을 통해 불법적인 무기 거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도 내비쳤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도 개정돼야 한다"며 확실하게 북한의 편을 들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속에서 러시아의 무기고 역할을 톡톡히 해준 김 위원장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상황 악화를 북한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자체 국방력을 강화하고 국가 안보를 보장하며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합리적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대신 이에 대한 징벌적 조치인 유엔의 대북 제재를 비판하며 김 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이 "(외국의) 협박성 발언을 용납하지 않겠다. 정치적 동기에 따른 제재에 맞설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 기술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새 협정 내에서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국제사회가 백안시하는 대북 군사기술 이전 문제에 대해 애매한 표현을 쓰며 비난의 초점을 흐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북·러 양측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위한 우주발사체를 비롯해 군사기술 협력도 일부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크렘린궁은 북·러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의료·의료교육·과학 등 분야별 협력 협정도 체결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 방북 대표단에 철도 분야 인사와 연해주 주정부 책임자가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북·러 간 나진·하산 철도 활성화 방안도 협의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러는 이날 회담에서 두만강에 자동차용 교량 건설에 대한 협정도 체결했다. 북한 노동자 파견 확대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성훈 기자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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