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불통과 불신, ‘윤석열식 의료개혁’의 끝은?
의사들의 대규모 휴진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면허 정지, 구상권 청구 검토 등 또다시 강수를 빼들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추가 휴진을 예고하자 정부는 의협 해체까지 거론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발표(2월6일) 이후, 전공의들의 집단사직(2월19일)으로 촉발된 소위 ‘의료대란’ 사태가 만 4개월을 지나고 있다. 극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환자와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불신, 불통, 절망, 분노… 지켜보는 시민들도 함께 ‘집단 울화병’을 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암담함이다.
이 모든 사태는 느닷없는 정부의 ‘2000명’ 증원 밀어붙이기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향후 5년간 2000명씩 의대 정원(현재 정원 3058명)을 늘려 1만명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총선 직전까지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조정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러 번 시사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분 2000명을 각 대학이 50~100% 사이에서 자율 결정하도록 방침을 바꿨고, 2025학년도 증원 규모는 1509명으로 정해졌다. 일거에 대폭 늘어나는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하고 변경하는 과정에서 어떤 설명이나 사과, 의료전문가들과의 진지한 의견 교환은 없었다. 의료계의 자료 공개 요구에 정부가 공개한 수많은 회의록 속에도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4월25일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정부는 의료계가 이 안에 들어와 의료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의견을 개진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의료개혁특위는 20명의 민간위원 중 의사 몫이 3명뿐으로, 의료계는 제대로 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며 참여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은 정부가 저질러 놓고, 고통은 현장에 떠넘기고, 당사자들이 알아서 대안을 마련하라니 이런 무책임이 어디 있나. 그것도 잘못된 방향과 추진 순서, 잘못된 풀이법을 내놓고 그 안에서 해결하라고 한다. 일방통행으로 대규모 증원을 해 놓고 나선, 증원이 다 정해진 마당에 의사들이 의료개혁을 발목 잡고 환자들을 볼모 삼고 있다고 정부는 되레 의사들에게 호통치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린 것으로 정부는 할 일을 다 했으니, 이후 현장에서 벌어질 일들은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고, 반대하는 세력들은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사회, 합리적 근거를 토대로 한 설득과 사회적 합의 과정은 사라지고, 여론과 힘으로 반대파를 굴복시켜 원하는 결론을 단시간 내에 얻어내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런 사회인가.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이어도 법과 절차에 따라 재판해야 하고, 아무리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또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설득하고 토론하고 중간 어느 지점에서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여론몰이로 정책이 통과된다면 법과 절차, 시스템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현 정부 들어 사교육, 연구·개발(R&D), 의사 증원 등 대통령의 한마디로 들쑤셔 놓은 난장판이 한두 곳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여러 분야를 초토화시키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현재 의료 현장은 아우성이다. 전공의와 학생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의 피로도 누적되고 있다. 당장 내년엔 3000명의 의사 배출이 줄어들 판이다. 진짜 의료개혁은 시작하기도 전인데 멀쩡한 의료시스템만 쑥대밭이 됐다. 10년 후 의사 1만명을 늘리겠다는 목표보다 현재의 생사를 가르는 의료공백이 더 무섭다는 호소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는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 학년이 통째 유급될까 다급해진 정부는 의대생은 F학점을 받아도 유급시키지 않는다는 꼼수 특례규정을 내놨다. 애초에 대입 정원의 10% 이상 변동이 있으면 1년10개월 전에 공지하고 협의해야 하는데 이 같은 원칙을 스스로 허물었다. 누가 누구에게 법과 원칙을 얘기할 수 있나.
현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신뢰 회복과 소통이다. 서로를 믿어야 뭐라도 얘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 아닌가. 현 정부가 꿈꾸는 의료개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의사들의 자발적 의지와 협조 없이 의료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의료개혁의 화두를 던진 윤석열 대통령이 현재의 총체적 난국을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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