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학살이 돈이 되는 세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뼈만 남은 유대인, 사악한 나치, 혹은 단 한 명의 유대인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적인’ 독일인 쉰들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유대인 강제수용소 바로 옆에 위치한 나치 친위대 관사에서 자신이 꿈꿔온 중산층 정상 가족을 이루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 속 회스 가족의 가장인 루돌프 회스는 실존 인물이다. 4년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1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고, 전후에 전범 재판을 통해 교수형을 당했다.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누렸던 “낙원과도 같은 삶”은 정확하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 덕분에 가능했다. ‘인종청소’라는 정치적 명분 뒤에 놓여 있던 현실적 이유 중 하나는 유대인 재산 약탈이었다. 그 재산에는 유대인이 사용하던 치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대인의 모든 것을 싹싹 긁어다 독일인의 배를 불렸던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 즉 ‘이익의 지대’다. 전쟁으로부터, 인간의 죽음으로부터, 그 생명의 갈취로부터 이득을 얻는 인간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수혜를 누리는 건 그저 몇몇의 힘 있는 권력자들만은 아니다. 나치를 위해 유대인 소각장을 디자인하고 건설한 업자나 남편이 강제수용소에서 거둬들인 유대인의 모피를 챙기는 회스의 아내 역시 덕분에 풍족함을 누린다.
시체를 쌓아 이익을 얻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자랑스러운 ‘K방산’도 그렇다. 한국인 역시 분단만 아니라면 전쟁과 무관할 것 같지만 의외로 가까이 얽혀 있다. 예컨대 매해 한강에서 개최되는 서울세계불꽃축제는 폭약과 화공품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방산기업이 “안전한 발사기술과 불꽃기술을 알리는 홍보의 장”이다. “아름다운 불꽃은 정교한 폭약에 대한 호감도를 높여주는 스텔스 마케팅”(문아영)이고, 불꽃쇼를 즐기는 ‘평범한 시민’들을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쟁 산업으로 연루시킨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관객을 그 ‘이익의 지대’에 조용히 남겨 두진 않는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치밀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그 이익의 지대를 가득 채운 죽음과 고통의 공기를 2024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회스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흐르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계속해서 아우슈비츠 철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절규, 그리고 소각장의 화염이 인간을 태우는 소리를 듣게 된다. 관객들이 ‘돈이 되는 죽음’이 발산하는, 신경을 긁는 메스꺼운 공기에 포획되는 동안에도 회스 가족은 그 앰비언스를 감각하지 못한다.
2024년 연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 아우슈비츠에서 나치가 누린 일상을 관람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물론 홀로코스트를 기억하자는 뜨거운 요청이 스크린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학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고도 놓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자지구에서 들려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비명을 그저 백색소음으로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 역시 피해가기 어렵다.
나는 요즘 페미니스트 비평가 그룹인 프로젝트38 동료들과 함께 ‘제2회 전쟁과여성영화제’를 준비 중이다. 이번 영화제 캐치프레이즈는 “전쟁의 일상화, 일상의 전쟁화”다.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전쟁을 영속하는 외교 정치가 어떻게 생명을 갈취하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려 마련한 자리다. 오는 6월2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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