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지 않을 결심’ 못 바꾼다…고용불안·사교육비·성평등 뒷전
정부가 19일 내놓은 저출생 대책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는 등 위기를 강조한 것에 비해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육아휴직·출산휴가 등 기존 대책을 강화해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은 담겼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또는 ‘아이를 낳기 어려운’ 사람에겐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보면 주로 일·가정 양립과 양육 등에 방점이 찍혔다. 남성 출산휴가 기간을 확대하고,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로단축 급여 상한을 늘리고 유치원·어린이집의 돌봄 시간을 연장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최근 저고위는 기존 저출생 예산 중 ‘저출생과 직결되는 예산’은 부족했단 주장을 펼쳐왔는데, 이를 반영해 출산 및 양육 지원 정책을 중심으로 공을 들인 모양새다.
이를 두고 과거의 ‘출산율 회복’ 패러다임으로 회귀했단 지적이 나온다. 출범 20주년을 맞은 저고위는 지금까지 네번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놨다. 출범 초기인 1차(2006∼10년), 2차(2011∼15년) 기본계획은 목표를 ‘출산율 회복’에 뒀다. 육아휴직 확대 등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을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고, 정부는 3차(2016∼20년)부터 일자리 등 사회구조로 눈을 돌렸다. 4차(2021∼2025년) 계획에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출산·양육 지원 대신 전반적인 ‘삶의 질 제고’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이미 효과를 보지 못한 ‘저출생과 직결되는’ 정책 중심으로 되돌아갔다.
박진경 전 저고위 사무처장은 “4차 기본계획에서 이미 출산 장려가 아닌 삶의 질 제고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바 있는데, 다시 출산 장려에 조급함을 보이는 정책으로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1·2차 계획 당시 출산·육아에 대한 직접 지원을 늘려서 유배우자 가구의 출산율을 높였지만, 결과적으로 전체 출산율은 계속 낮아졌기 때문에 반성이 있었던 것”이라며 “이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를 지양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지금은 과거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 환경의 근본 원인을 개선하는 사회구조 개혁은 ‘추후 과제’로 밀렸다. 저고위는 저출생의 구조적 요인으로 좋은 일자리 부족, 노동시장 이중구조, 수도권 쏠림, 사교육비 부담 등을 언급하면서도 구체 대안 없이 “지속적으로 대응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용보험 제도 밖에 있어 육아휴직 기회 등을 얻기 어려운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및 자영업자에 대한 개선 방안도 “연구용역 중”이라고 저고위는 설명했다. 지난달 기준 취업자(2891만5천명) 대비 고용보험 상시가입자(1539만3천명) 비율은 53.2%로 고용보험 밖에 있는 나머지 노동자들은 이번 대책에서 비켜난 셈이다.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이번 정책으로 새로 결혼·출산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고, 기존에도 결혼·출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사람들이 혜택을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도 “불평등 문제 등에 대해서도 대응이 있어야 하는데,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 없고 기존 정책들을 조금 더하는 방식으로 해선 판을 바꾼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저출생 문제 해결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성평등 역시 양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한 교육 확대, 직장 내 성차별 방지 위한 컨설팅 지원 등 효과가 불분명한 ‘맹탕’ 정책만 담겼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4차 기본계획에는 삶의 질 향상과 함께 성평등이 목표로 들어갔는데, 지금은 그런 내용이 전부 빠졌다”며 “지금은 돌봄 문제를 여성에게서 (돌봄노동자, 이주민 등) 다른 여성에게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가 감소하는 ‘축소사회’에 대한 대응도 빠졌다.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장인 최영준 교수(행정학)는 “상황 진단은 비상사태인데 내용은 매번 반복적으로 나오는 기존 대책 강화 수준”이라며 “저출생 대책은 인구감소 사회를 대비하는 대책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이 현장에서 활발히 적용되도록 기업을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방안도 부족하단 비판도 나온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자율 공시 기준에 일·가정 양립 경영지표 반영, 육아휴직에 따른 대체인력 고용 시 지원금 지원, 대체인력 지원금 120만원으로 상향, 동료 업무분담 지원금(20만원) 신설 등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늘었지만, 제재 방안은 ‘철저한 근로감독’ 정도에 그쳐 아쉽다는 평이다. 송다영 교수는 “기업 대상 정책이 늘어난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법적 근거를 만들어 제재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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