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세월호·이태원 기억공간 찾은 평화운동가의 탄식
백발의 노학자 더글라스 러미스(88)가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 들어섰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희생자 한 명, 한 명 사진을 들여다봤다.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을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 아니, 이 감정을 표현하려는 것조차 어리석은 것 같다”는 탄식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단원고 2학년4반 희생자 김웅기군 어머니 윤옥희씨가 아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제 아들이에요. 셋째 아들 중 막냅니다”라고 소개하자 러미스는 묵묵히 윤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윤씨가 “이제 이 아이들이 다 내 아들, 딸 같다”는 윤씨의 말에 노학자는 경의를 표했다.
<래디컬 데모크라시>,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인 러미스는 미국 정치사상가이자 평화운동가다. 일본의 대학교수로 있다 은퇴한 그는 오키나와에 산다. 그가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20~21일 경기 안산에서 열리는 ‘4·16국제심포지움’에 기조발제자를 하러 한국을 방문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은 참사 피해자들이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고, 피해자의 권리를 찾아간 세월이었다. 4·16재단 등은 소위 ‘4·16운동’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켰는지 톺아보고 이후를 모색하는 행사를 준비했다.
이태호 4·16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세월호를 넘어 다른 참사에서도 ‘세월호 그 이전’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다짐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적인 허점 때문에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아카시시 육교 압사 참사’ 유가족 시모무라 세이지(66)도 러미스와 함께 세월호 기억공간뿐 아니라 서울 중구 부림빌딩에 지난 16일 문을 연 이태원 기억·소통 공간도 찾았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가족들이 서울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만들어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 끝에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며 “지난 일요일, 외부의 분향소에서 이 공간으로 이전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고 했다.
외국에서 온 두 발제자는 두 참사의 기억공간에 놓인 희생자들을 눈에 담으며 기록과 기억의 힘을 강조했다. 러미스는 “희생자의 가족들이 슬픔과 고통을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바꿔내신 것에 존경을 표한다”며 “그 노력이 다시는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이지는 “세월호·이태원 참사 모두 사전에 적절한 대응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생각한다”며 “이런 공간들은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남겨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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