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하루] 에도시대 이시다 바이간의 상인 윤리

여론독자부 2024. 6. 19. 19:2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근대 상인 및 상행위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한국(조선)만의 상황이 아니라 중국(명·청)과 일본(에도막부)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 에도시대인 18세기 초반에 등장한 이시다 바이간의 상인 윤리에는 분명 차별점이 보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혁신적인 이시다의 사상은 상인들의 이윤 획득이 결코 부끄럽거나 비천하지 않다는 선언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서울경제]

전근대 상인 및 상행위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한국(조선)만의 상황이 아니라 중국(명·청)과 일본(에도막부)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 에도시대인 18세기 초반에 등장한 이시다 바이간의 상인 윤리에는 분명 차별점이 보였다. 막스 베버가 서양 근대화의 원동력인 ‘자본주의 정신’을 기독교의 프로테스탄티즘으로 파악했다면 로버트 벨라는 그 일본 버전을 ‘이시다 가문의 심학(心學)’에서 찾았다.

1685년 10월 12일 교토 근교의 산간벽촌에서 태어난 이시다는 일본에서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소비가 활발해진 겐로쿠 시대(1688~1704년)에 교토의 포목상에서 43세까지 상업에 종사해 두각을 나타냈다. 장사를 하던 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으며 독학하던 이시다는 1727년에 돌연 장사를 그만두고 45세가 되는 1729년부터 고향 자택의 한 방을 교실로 삼아 무료로 강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교토나 오사카에서 온 상인들이 많았고 1739년에 출간한 ‘도비문답(都鄙問答)’에는 ‘상인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시다의 답변이 담겨 있다. 그의 답변에는 검약·근면·정직·신뢰가 강조되는데 베버가 주목했던 프로테스탄티즘의 검약 및 근면과 상통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혁신적인 이시다의 사상은 상인들의 이윤 획득이 결코 부끄럽거나 비천하지 않다는 선언이다. “상인은 금전 출납의 계산에 정통함으로써 나날의 생계를 꾸길 수 있기에···이러한 나날을 꾸준히 이어가며 부를 쌓는 것이 상인으로서의 바른 도리이다. ···그리하여 부를 산과 같이 이루었다 하여도 그 행위를 탐욕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상인이 ‘천하의 재화를 유통시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유는 책상 위의 철학이 아니라 상인으로서의 실천적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신선했으며 그의 사상을 학습한 상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더 이상 부끄러워 않고 일상의 의미를 깨달아 검약에 힘쓰면서도 근면해져 더 많은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